지금 이 시대에도 왕진가방을 들고 환자 집을 찾아다니는 의사들이 있다. 비가...
30대 젊은 남자 환자가 경기 성남시 보바스기념병원 완화의료센터로 들어...
전북 전주에서 한참 벗어난 깊은 산골짜기의 비구니 스님들이 참선하는 사찰에 머문 적이 있었다. 겨울 추위로 온기조차 간데없는 선방이라 책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 하고 있을 때 주지 스님이 들어와서 며칠 전 손님 이야기를 꺼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죽은 자도 말을 하는 것 같다. 누가 그렇게 할까. 죽은 자들이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CSI과학수사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다. 이 기관의 최고책임자를 지낸 부부가 있다. 10년을
일본 오사카 시내에 어린이 전용 호스피스 병동이 이달 초에 문을 열었다. 어른들에 끼여 치료를 받았던 소아 말기 환자들을 따로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어서 벌써 만원사례라고 한다. 어린이 암 환자가 계속 늘어나 일본 정부도 민간 의료기관에만 의지할 수 없었던지 연말까
말기 암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가 경기 고양시 일산 백석공원의 단풍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다. 3명의 호스피스 봉사자가 침대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뒤쪽 난간을 붙잡았다. 한 침대가 사라지면 그 다음 침대가 숲 속으로 굴러가고 또 다음 침대가 줄을 이었다. 침대 머리맡
그동안 칼럼을 읽은 독자들에게서 e메일이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심신이 지친 환자를 위로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환자나 보호자가 꽤 있었다. 그런데 말투가 다소 시비조였다. 가슴에 맺힌 사연들이 풀리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이 중 몇 명의 길고 긴 하소연을 요약하
서울시 의사회에서 웰다잉 강의를 마칠 때쯤이었다. 한 의사가 일어나서 하는 말이 의과대학 시절부터 환자 치료만을 배웠을 뿐이어서 죽어 가는 사람을 다루는 법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말기 환자들의 불안심리나 통증도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고 한다. 의사들도 죽음 공
출구전략이라는 말이 경제적 또는 군사적 위기를 돌파하는 경우에만 쓰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이나 스위스 등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출구전략’이 자주 담론으로 등장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유심히 들여다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삶의
지난여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신현호 변호사 사무실에 잘 차려입은 80대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가 앞세운 중년의 남자는 큰 병원 부원장 이름이 적힌 명함을 변호사에게 건넸다. 어리둥절해하는 신 변호사에게 할머니는 사전의료의향서(예전에는 생전유언 또는 존엄사 선언
서울대병원은 우리나라 의료 권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제주도에서 당일치기로 드나드는 해녀에서부터 장차관과 국회의원, 전현직 대통령이 기꺼이 진료를 받는다. 전국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병원은 언제나 남대문시장처럼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의사 3분 진료’를
멋있는 죽음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7년 전 내가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실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 이후 죽음교육 강의를 할 때는 환상을 부수라는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들이 허다했다. 말기
연극배우가 된 지 17년째에 접어든 박용범 씨(43)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경기 포천시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너, 나를 그곳에 버리려고 그러지.” 아버지의 시선은 처져 있었고 목소리는 맥없이 가라앉았
서울이나 지방 소도시에서 갖는 웰다잉(well-dying) 강의에는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진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가 등장하다 보니 분위기는 다소 무겁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가 자신들의 문제로 느껴지면 참석자 모두들 눈을 반짝인다. 궁금증이 가득 찬 시선이 몰려
8월의 무더위에도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렸다. 두 차례의 태풍경보에도 전화는 더 요란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8월 하순 나는 서울 신문로에 있는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전화 응대에 귀를 기울였다. 아름다운 이별을 도와주는 곳이냐고 묻는다,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