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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0>세상 떠날 때, 모두가 존엄을 말한다

입력 2012-10-23 03:00업데이트 2012-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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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출구전략이라는 말이 경제적 또는 군사적 위기를 돌파하는 경우에만 쓰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이나 스위스 등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출구전략’이 자주 담론으로 등장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유심히 들여다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삶의 출구전략’이라는 것은 어떻게 인간다운 모습으로 존엄을 지키며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도 존엄사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 나라 의료기관에서 통용되는 생전 유언서(우리나라의 사전의료의향서)의 제목이 ‘파이널 엑시트(Final Exit)’이다. 이 서류에는 인생의 마지막 출구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가족과 의사에게 당부하는 주요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출구전략’에 인간의 존엄 중요

이 문서의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나는 건전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주의 깊게 검토하면서 이 서류를 작성합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나의 존엄이 무너져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서구 여러 나라의 존엄사협회도 상징적으로 ‘엑시트(Exit)’라는 단어를 단체 이름에 붙여 쓰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인생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출구를 향해 달리는 셈이고 사방 어디나 출구가 아닌 곳이 없으니 늘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출구에서는 예외 없이 사용되는 언어가 인간의 존엄(dignity)이었다.

그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를 몸으로 느낀 것은 올해 4월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응급실 게시판에서 나는 이런 글을 읽었다.





‘우리는 환자의 존엄을 지킨다.’

이 짧은 메시지가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진을 경외의 시선으로 쳐다보게 만들었다. 주말에 일어난 교통사고 환자와 일반 응급환자로 어수선한 병원에서 존엄은 환자를 대하는 기본 가치였다. 한국 교포들이 많이 몰려 있는 플러싱의 매너요양병원도 똑같았다.

1층 엘리베이터 옆 벽에는 ‘입원 환자들은 존엄하게 대우받고, 존엄하게 치료 받으며, 존엄하게 생활할 권리를 갖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병원에는 백인뿐 아니라 한국 및 라틴계 미국 노인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 퀸스나 롱아일랜드 지역의 다른 요양병원도 다를 바 없다. 4년 전 방문했던 뉴욕 주의 가장 큰 말기환자 병원(뉴욕 호스피스 케어 네트워크)의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또 내 시선을 붙잡았다.

‘우리들은 환자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안한 투병생활을 하도록 돌보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존엄을 갖춘 여생을 보냅니다.’ 이 문구에 대한 힝켈먼 병원장의 따뜻한 설명도 감동을 주었다.

존엄사는 그들의 일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구태여 ‘존엄’을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거기에는 친절한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부드러운 미소가 있었다. 그림 같은 장면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봉사였다. 해가 질 무렵 잔디밭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말기 환자들과 어린이 봉사자들의 긴 그림자가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 있다.

미국의 존엄사와 한국의 존엄사는 어떻게 다를까. 왜 한국에서는 존엄사라는 어휘를 둘러싸고 논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될까에 나는 많은 궁금증을 가져 왔다.

미국은 인권사상의 뿌리나 개인주의 역사가 우리와 다르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존엄사(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의한 사망) 개념을 그들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1997년 미국 오리건, 워싱턴 주 등이 제정) 위에 올려놓고 해석하려 한다.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도 빚어졌다. 미국의 존엄사법은 의사가 도와주는 안락사까지 포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존엄사 운동은 이와 달리 마지막 단계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사용을 거부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각 주가 만든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1976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각 주가 제정해 연방법과 같은 효력을 가짐)과 비슷하다.

지금 미국 여러 곳에 있는 요양병원을 포함해 각급 병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자연사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를 미국처럼 자연사로 바꿔 부르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환자를 정성껏 돌보지 않고 팽개친다는 뉘앙스로 풍자될 수 있어 기피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단어가 존엄사였다. 일본이 1983년부터 영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예민한 해석


최철주 칼럼니스트최철주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전후해서야 안락사와 구분된 존엄사가 국어사전에 등장했다.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에는 존엄사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으로 표현됐다. 우리나라 미디어를 포함한 여론이 이를 부득불 ‘존엄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죽음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그처럼 명백하고 간단한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거의 모든 선진국이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20자가 넘는 긴 법률명을 아예 존엄사법이라고 불러도 탈이 없다. 우리는 일부에서 존엄사를 ‘소극적 안락사’라고만 해석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예민한 해석이라고 본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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