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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한 트라우마[오늘과 내일/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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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대한 트라우마[오늘과 내일/김광현]

김광현 논설위원 입력 2019-10-10 03:00수정 2019-10-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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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경제위기, 디플레 닥친 건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정책에 경종 울려야
김광현 논설위원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경기 하강이 우리 경제에 어려움을 주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낙관론을 되풀이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산업현장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빈약한 자료를 근거로 자신감을 피력할 때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은 경제위기가 아니다. 위기에 대해 딱 부러진 정의는 없다. 오랜 기간 지속된 침체 혹은 예측하지 못한 외부 충격으로 경제주체들이 심리적 공황을 겪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고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위기라고 할 수 있겠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당시 겪었던 바다. 지금이 디플레이션 상황도 아니다. 디플레이션은 비교적 정립된 개념이다. 앞으로 자산 가격이나 물건 값이 계속 더 떨어질 것이란 예측이 만연해야 한다. 물건을 안 사니 생산이 줄고 가격을 더 낮추는 악순환이 벌어져 백약이 무효인 상태다. 잠깐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상태가 아니다.

지금이 경제위기라거나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는 경제전문가는 없다. 경기가 최고 꼭대기를 찍은 것을 24개월이나 지난 뒤에 결론을 내리는 게 학자들의 습성이다. 그렇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이 세계 경기가 하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쪽만 말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3저 호황처럼 운 좋게 세계 경기의 훈풍을 탄 적이 있지만 대개는 세계 경제의 거센 풍랑을 거쳐 왔다. 관건은 늘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부의 대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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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쟁력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재정 상태가 빠른 속도로 취약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올 들어 8월까지의 상황을 보자. 국세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3조7000억 원, 소득세는 1조1000억 원, 부가세는 4000억 원씩 줄었다. 세금 수입이 이처럼 줄고 있는데 지출은 38조8000억 원이나 늘었다. 국가 부채가 사상 최대인 697조9000억 원으로 700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복지는 처음 받기 시작할 때는 혜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권리가 된다. 한 번 주면 다시 빼앗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을 신중히 해야 한다. 성장동력은 멈춰 가는데 이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속도 조절이 필요한데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한다. 선거로 가는 길 역시 늘 선의로 포장돼 있다. 대중적 감수성에 호소해 득표에 도움 되는 정책들만 난무한다. 그게 바로 그리스, 아르헨티나식 위기로 가는 지름길이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임을 인정한다면 당장 인기는 없지만 경제 체력을 튼튼히 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공무원은 늘릴 게 아니라 줄여야 한다. 신의 직장 공기업을 개혁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세계 141개국 가운데 130위인 노사문화를 더 이상 이대로 둘 순 없다. 과감한 규제 혁파로 경제 최전선에 나가 있는 기업들 기를 살릴 정책도 내놔야 한다. 실제 나오는 정책은 하나같이 역주행이다. 콩 심어 놓고 팥 나기를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부처를 출입했던 기자로서 가슴 한편에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있다. 경제 펀더멘털이 좋다는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들어 경제 대재앙에 대해 경고음을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지금이 사전적 의미로 경제위기가 아니고 디플레이션 상태가 아닌 줄 모르는 바 아니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면 더 어려워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다가 위기로 갈지 모른다는 절박함 혹은 최소한의 위기의식마저 없어 보이는 정부나 정치권의 행태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경종을 울리지 않을 수없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경제위기#세계 경기 하강#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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