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중국 통계[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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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2015년 공개한 주중 미국대사관의 전문에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인위적이고, 믿을 수 없는 랴오닝성 경제성장률 수치를 보고 미소 지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국가지도자가 통계 조작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폭로였다. 리 총리는 앞서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 시절 경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신뢰할 수 없는 국내총생산(GDP) 대신 철도 물동량, 전력 소비량, 은행 신규대출 지표를 봐야 한다고 말했던 전력이 있다.

▷중국 정부가 불과 일주일 만에 코로나19(우한폐렴) 환자 집계 방식을 또 바꿨다. 중국은 12일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 등 임상 의료진 판단으로도 확진 판정을 내리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했다. 그러자 후베이성에서만도 하루 새에 확진자가 1만4840명, 사망자가 242명 새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엔 확진자가 1638명, 사망자가 94명 증가했던 것보다 확진자는 9배, 사망자는 2.6배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19일부터 임상 의료진 판단에 따른 환자를 통계에서 빼는 것으로 집계 방식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이날 후베이성의 신규 확진 환자가 349명, 사망자는 108명으로 급감했다. 환자가 급증하거나 급감할 때 모두 자세한 배경 설명은 없었다. 사망자 수와 비교할 때 환자 수가 너무 적어 보여서 기준을 올렸더니 이젠 부담스러워서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어이없는 집계 결과도 나왔다. 19일 후베이성이 발표한 집계에서 후베이성의 도시 중 한 곳인 우한에서만 환자가 615명이 늘어났는데, 우한과 다른 도시들을 모두 합한 후베이성 전체의 환자 증가 규모는 349명으로 집계된 것이다. 마치 종로구 인구가 서울시 인구보다 많다는 집계처럼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통계인 것이다. 또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후베이성 이외의 중국 내 환자는 베이징 2명 등 45명만 늘었다고 했지만, 실제 베이징의 환자 수는 34명이었다.

▷중국에선 전국 31개 성(省)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더한 수치가 국가 GDP보다 5∼10%가량 많게 나오는 일이 빈번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수시로 기준을 바꾸며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한 통계 수치를 제시하다 보니 불신만 커진다. 눈에 곧바로 띄는 인프라가 사회간접자본(SOC)이라면, 통계는 눈에는 바로 보이지 않지만 정책의 기초로 활용되는 핵심 지식 인프라에 해당한다. 그러니 통계의 정확성과 신뢰가 진정한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잣대로 쓰이는 것 아니겠나.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
#중국 통계#코로나19#환자 집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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