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정치를 위한 국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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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편가르기’로 변질된 적폐청산, 사회의 다양성을 오히려 해하는 행위
경제·사회적 평등은 필요한 가치지만 성장을 통한 복지라는 순서 인식해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장·노년기 국민들에게 물어보라. 노무현 정권이 국민을 위해 남겨 준 것이 무엇인가. 정치적 갈등과 혼란의 연속으로 사회질서까지 퇴락시켰다고 보는 기성세대가 적지 않다. 현 정부는 제2의 노무현 정권을 자처한다. 참여정부가 남겨 준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책임을 물려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결과로 보아서는 더 심한 갈등과 혼란을 계속할 것 같다.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현 정권만큼 이념을 위한 정치를 주관해 온 과거가 없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의 행복이다. 지금 우리는 현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더 행복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국민을 위한 정치이기보다는 정치를 위한 국민으로 역전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치인들의 대립과 싸움이 기대했던 국민의 행복을 무산시켜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촛불혁명이라는 개념까지 인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문재인 정권으로 이양케 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행진은 과거의 4·19 때와 성격이 같은 순수한 국민의 호소와 요청이었다. 정치계 전체의 혁신과 반성을 성토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민노총의 견해와는 반대되는 애국적 갈망이었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염원한 것 같은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 해답은 임기 말까지 기다려야 할 과제다.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6·25 이후부터 대한민국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노선을 따랐다.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을 포함해 북한을 제외한 아시아 모든 국가가 그 방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와 현 정부는 평등우선 사회주의와 국가경제의 노선을 부활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두 갈래의 노선은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병행할 수 없다. 한쪽을 선택하거나 선후절차의 조정이 필수적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구성할 때부터 평등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지난 1년여에 해당하는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과오를 탈출하고 회복하기 위해 포괄적 동반성장의 길을 제시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 선후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국제경쟁 무대에서는 선의의 시장경제에서 국가소득을 먼저 높여야 한다. 그것이 세계 경제의 상식으로 돼 있다. 그 과정에서 안전성이 정착되면 소득 증대와 복지 분배의 절차가 뒤따르게 된다. 국민 전체의 참여의 길도 가능해진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하며, 문화 교육계 지도자들이 정신과 문화계에 봉사하듯이, 기업인들이 국가경제를 위해 기여하는 제도와 방향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국민들은 적폐청산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더 소중한 사회질서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적폐청산이 5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목적도 확실하지 않다. 적폐의 주체는 사회의 여러 임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 책임자들을 우리 편 사람들로 개편하기 위한 청산작업이라면 그 청산은 최악의 적폐로 변질될 수 있다. 사회의 선한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은 이기적 편 가르기다. 집단이기주의는 적폐주의의 적폐가 된다. 박근혜 정권 때에도 편 가르기를 경험했으나, 현 정부에서는 국민 전체를 이념의 편 가르기로 유도해 가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현 정부는 사회정의와 평등을 호소한다. 그러나 정의의 잣대가 이중이어서는 안 된다. 경제적 평등이 사회적 생존의 전부가 아니다. 인간의 생활과 가치관은 다원적이다. 무소유의 삶을 택하는 윤리 종교적 가치도 있을 정도이다. 정의는 독존적 가치가 아니다. 선한 질서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정의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는 인간애를 위한 의무와 책임이다. 정의가 유일하거나 절대가치는 못 된다. 증오와 복수를 가장한 정의는 사회악의 원천이 된다.

법조계의 원로였던 김홍섭 판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법관으로 있으면서 사형선고를 비롯한 중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있었다. 김 판사는 “나도 당신과 같은 죄인일 수 있다. 당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법관이기 때문에 사회질서를 위해 판결을 내린다. 피고인 당신과 다름이 없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에 눈물을 금할 수 없다”고 고백하곤 했다.

나는 철학도의 한 사람으로 믿는 바가 있다. 사랑(휴머니즘)의 나무에만 자유와 평등의 열매가 함께 맺을 수 있다는 신념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적폐청산#노무현#정치#촛불혁명#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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