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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전설의 뮤지션들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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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임형주의 뮤직 다이어리]전설의 뮤지션들 ⑦

임형주 팝페라테너입력 2015-02-11 03:00수정 2015-1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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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3대 디바’ 맏언니, 휘트니 휴스턴 전 세계 팬의 영혼을 울린 ‘솔팝의 여신’
풍부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미모를 가진 휘트니 휴스턴.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과 함께 ‘팝의 3대 디바’로 꼽힌다.

임형주 팝페라테너
‘디바(Diva)’는 ‘여신’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로 통상적으로 오페라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소프라노 가수, 특히 천부적 자질이 풍부한 여가수를 가리키는 용어죠. 20세기 들어 팝음악계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 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각자의 천부적인 재능과 카리스마로 1980년대 후반∼1990년대를 호령하며 ‘팝의 3대 디바’로 손꼽혔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을 대표하는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그리고 캐나다가 낳은 국보급 보컬리스트 셀린 디옹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맏언니이자 풍부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미모를 겸비하여 영화 ‘보디가드’의 헤로인으로도 사랑받았던 ‘솔(Soul)팝의 여신’ 휘트니 휴스턴입니다.

○ 음반제작자 클라이브 데이비스에게 발탁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8월 9일, 뉴저지 주의 뉴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육군 군인이자 연예 기획사의 최고경영자였던 존 러셀 휴스턴 주니어(1920∼2003), 어머니는 가스펠 가수였던 에밀리 시시 휴스턴이에요. 오빠 게리 갈런드는 가수(전직 프로 농구선수)였으며, 또 다른 오빠 마이클도 훗날 휘트니의 투어 매니저 겸 작곡가로 활동하였으니 그야말로 ‘예체능 가족’이었답니다.

휘트니는 열한 살 때부터 교회성가대의 솔리스트(독창자)로서 공연하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함께 클럽들을 순회하며 공연하기도 하는 등 어린 나이부터 재능을 보였답니다. 그러던 1983년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휘트니가 어머니와 공연하는 것을 당시 최고의 음반제작자인 아리스타 레코드사 대표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음반 계약을 제의하게 됩니다. 이후 데이비스는 휘트니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영원한 지원군이자 든든한 ‘대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해 6월 23일, 그녀는 당시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던 최고의 인기 토크쇼 ‘머브 그리핀 쇼(The Merv Griffin Show)’에 데이비스와 함께 출연하여 TV 데뷔를 하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펼치며 미국 전역을 놀라게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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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보드와 그래미를 넘어 세계를 감동시키다!

휘트니 휴스턴은 2년여간의 준비 끝에 1985년 2월 데뷔 앨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을 발표하게 됩니다.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발표된 이 앨범은 미국의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와 롤링스톤지 등의 찬사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수록되었던 노래 중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 ‘하우 윌 아이 노(How Will I Know)’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 등 3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였고, 미국 빌보드지 연말 결산 차트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됨과 함께 제28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그녀 생애 최초로 ‘팝부문 최우수 여자 보컬’상을 수상하는 등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데뷔 앨범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무려 14주나 1위를 기록하였고, 미국에서만 13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의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게 됩니다.

데뷔 앨범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휘트니 휴스턴은 1987년과 1990년에 각각 정규 2집 ‘휘트니(Whitney)’와 정규 3집 ‘아임 유어 베이비 투나이트(I‘m Your Baby Tonight)’를 잇달아 발매하며 계속해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던 1992년 그녀에게 운명같이 찾아온 할리우드 영화 ‘보디가드’의 출연 제의를 받고 그녀는 영화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 1억2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고, 전 세계적으로는 4억1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 역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중 타이틀곡인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는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간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수립했고, 미국과 영국 외에도 거의 모든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메가톤급 인기를 누립니다.

또 이 앨범은 1993년과 1994년에 열린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석권하였습니다. 1994년 제36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본상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상을 포함하여 3개 부문 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열린 21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는 공로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의 상을 수상하여 한 해 최다 부문 수상 기록을 세웠으며, 그 외 11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5개의 월드 뮤직 어워드 등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의 수많은 상을 석권했습니다.

○ 불안한 가정생활과 약물 중독으로 세상과 작별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데, 그건 바로 팝음악계 최고의 악동으로 불리는 아이돌 출신의 힙합가수 바비 브라운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이들의 결혼 생활은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둘은 성격 차이로 빈번하게 다퉜으며 이로 인해 음악 활동에도 큰 지장을 받게 되었고, 결국 그녀 또한 알코올의존증, 약물 중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습니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후 2007년 바비 브라운과 이혼하게 되었고, 자신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대부인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도움을 받아 재활치료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치료를 하며 컴백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그녀는 2009년 그동안 자신의 고난과 역경, 아픔 등을 노래한 7년 만의 정규 음반 ‘아이 룩 투 유(I Look To You)’로 팝 음악계에 컴백합니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뿐 아니라 전 세계 수십 개국의 앨범 차트 1위를 점령했고 이로써 휘트니 휴스턴은 성공적인 컴백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시 정상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2012년 2월 그래미상 시상식 공연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날까지도 심금을 울리는 그녀의 음성은 늘 우리 곁에서 마음을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있습니다.

임형주 팝페라테너


#휘트니 휴스턴#솔팝의 여신#팝의 3대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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