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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루저’와 ‘헬조선’, 그리고 ‘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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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SNS에서는]‘루저’와 ‘헬조선’, 그리고 ‘노오력’

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입력 2016-01-08 03:00수정 2016-01-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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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새해를 맞아 ‘부장님(기성세대들의 어법을 통칭하는 인터넷 용어) 덕담’을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벌써 몇 년째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이야기여서 이미 보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법’이라는 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알파벳 26자에 순서대로 숫자를 대응시킵니다. A는 1, B는 2, Z는 26이 되는 식입니다. 그리고 여러 영어 단어 중 숫자들을 모두 더해 100점이 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묻는 겁니다.

이 계산에 따르면 ‘열심히 일하기(hard work)’는 98점이었습니다. 지식(knowledge)은 96점, 돈(money)은 72점입니다. 정확히 100점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히 100점을 이루는 단어는?


답은 바로 ‘태도(attitude)’입니다. 나와 남을 대하는 태도가 성공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원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긍정적인 태도로 살자는 교훈과 함께. 하지만 지난해 11월,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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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100점짜리 인생을 만드는 방법은 바로 ‘고자되기(impotence·발기부전이나 무기력이라는 뜻도 있음)’라는 겁니다. 어차피 성공하기 힘든 세상, 욕망을 버리고 포기하면 편하다는 겁니다. 영어 단어를 적절히 의역한 재치도 돋보였지만 각 알파벳을 더해 보니 정확히 100점입니다. 부장님들이 무릎을 탁 칠 만한 센스입니다. 글에는 지금까지 좋아요 2055개, 댓글 250여 개가 달렸습니다. 공유는 164건입니다.

이 글을 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일하니까 98점이지. 여어얼심히 일해야(haaard work) 할 것 아니냐’ ‘노력(effort·70점) 말고 노오오력(effooort)을 했어야지’ 등등…. 하나같이 요즘 세태를 비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SNS를 휩쓸었던 많은 유행어와 신조어에는 대개 팍팍한 청년층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노오력(‘요즘 젊은이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비판을 비꼬는 표현)’ ‘N포 세대(거의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세대)’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누리꾼들이 옛날부터 나라 탓, 환경 탓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2009, 2010년에는 루저(패배자)와 잉여(剩餘)인간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 또는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비하했습니다. 삶이 팍팍한 이유를 개인의 부족함이나 잘못에서 찾은 겁니다.

그러자 이듬해부터 이른바 ‘힐링 코드’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유행했고,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미니홈피에 음식이나 여행지, 베스트셀러 같은 사진을 올려놓고 열심히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누리꾼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거나 언젠가는 잘될 것이라고 믿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보다 왜 태어날 때 물었던 수저 색깔에 따라 인생 자체가 달라지는지에 분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싫어서’ 같은 소설에 열광했습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 아프니까 청춘이잖아’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아프면 환자지 ×××야(tvN 코미디 프로 SNL코리아 중)’라고 받아치는 사진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는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을 향해 노력을 요구합니다. 한 중소기업의 간부는 “내가 영업사원일 때는 영업을 위해서 술집 테이블 위에 쏟아진 술도 핥아먹었다”며 “요즘에 그런 노력을 하는 친구가 있느냐”고 되물으시더군요.

맞습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반문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노력만 하면 되도록 한국 사회에 깔린 수많은 걸림돌을 얼마나 치워줬는지 말입니다. 설마 자식이나 손자 세대가 취직을 위해 술집 테이블을 핥길 바라는 건 아니겠죠.

권기범 디지털통합뉴스센터 기자 kaki@donga.com


#루저#헬조선#노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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