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57>라디오의 말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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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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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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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들어 잇따라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했다. 1961년 7월 서울국제방송(HLCA), 8월 광주기독교방송(HLCL), 11월 이리기독교방송(HLCM)이 개국했고, 부산문화방송(MBC)은 12월 서울 지역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1962년 10월에는 기독교방송이 방송 허가를 받았고, 동아일보사는 1963년 4월 25일 동아방송(DBS) 라디오를 개국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방송 겸영 신문사가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의 TV 수상기가 3만4774대에 불과했던 1963년 무렵에는 라디오가 대세였다.

금성사의 금성라디오 광고(동아일보 1965년 8월 14일)에서 이 무렵 라디오의 청취 습관을 엿볼 수 있다. T-810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안테나를 한껏 뽑아 올리고 여인이 눈을 감은 채 감동에 취해 고혹적인 자태로 라디오를 듣고 있다. 별도의 헤드라인 없이 금성라디오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 “위로의 벗/즐거움의 벗/지식의 벗/언제 어디서나/당신의 벗”이라는 보디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벗’이라는 단어를 네 번씩이나 강조했다. 라디오의 손잡이도 세워 놓아 언제 어디서나 휴대할 수 있음도 빼놓지 않았다.

요약하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순간에 라디오는 늘 벗이 되어 준다는 내용이다.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 친구라면, 서로 깊은 마음까지 나누는 사이는 벗이다. 친구는 벗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금은 자주 쓰이지 않는 벗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던 점에서 볼 때, 당시에 라디오는 마음까지 주고받았던 미디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시절엔 라디오 소설이 인기 폭발이었는데 요즈음의 인기 드라마 이상이었다. 벗 같은 매체였기에 가능했으리라.

라디오는 전달하는 메시지를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신데렐라 같은 매체가 아닐까. 청취자 스스로 상상하게 만드는 여백과 상상의 미디어이기도 하다. 라디오를 ‘마음의 극장(the theater of the mind)’이라고 하는 까닭은 영상이 없지만 소리를 듣는 순간 영화 같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영상 이미지에 비해, 발길질하듯 귀에 쏙쏙 박히는 라디오의 ‘말길질’은 더 오래오래 기억된다. 결코 라디오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라디오 방송국#금성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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