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포털과 민주주의의 화해를 위한 제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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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뉴스 유통이 포털을 통해 여론조작에 가장 취약한 구조 형성
유통 분산 전에는 해결 불가능
뉴스, 댓글 모두 담아 고객 유인하는 ‘가두리 양식’ 비즈니스 모델 접어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필자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말, 이미 해외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인터넷이 초래할 민주주의의 위기를 예견했다. 당시 필자도 지도교수와 공저한 몇 편의 논문에서 인터넷 환경이 정치적 양극단화와 황색저널리즘의 창궐을 조장할 것이라 결론 내렸다.

국내 전문가들은 달랐다.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으로 함량 미달의 언론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기형적 상황을 미디어 ‘다양성’ 확대로 봤다. 여론재판식 인격살인 등 인터넷 공간의 폭력성 논란이 불거져도 ‘표현의 자유’의 부작용 정도로 치부했다.

유독 인터넷에만 관대했다. 우리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을 두고 있다.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언론사, 조사기관은 물론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도 희생을 요구받는다. 대표성을 지향이라도 하는 여론조사와 달리 인터넷 공간은 그런 전제도 없다. 그럼에도 ‘성역’으로 간주됐다.

포털들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위한 관대함 뒤에 교묘하게 숨어 왔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성역화된 인터넷상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면죄부를 받아 왔다. 포털이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지난 20년간, 언론생태계는 철저히 파괴됐다. 6000여 개의 매체가 난립하다 보니 진보든 보수든 취재력을 갖춘 언론사들은 경영난이 심각하다. 기업들은 협박을 일삼는 소위 유사 언론들에 시달린다. 포털의 인터넷 트래픽 독점으로 포털 친화적이지 않은 서비스 모델로는 창업도 불가능하다.

포털들은 비판 여론이 있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미봉책을 내놓으면서 현재의 영업 모델을 영구화하기 위한 편집 전략을 써 왔다. 필자는 지난 3년간 매년 한 달 정도 인기검색어 검색 결과와 ‘메인 뉴스’에 게재되는 기사들을 전수 수집해 포털들의 뉴스 편집 기준을 역분석했다.

구글과 비교해 국내 포털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유력 언론들의 기사가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포함될 확률이 현저히 낮았다. 구글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이었다. 실제로 구글은 기자 및 편집실 규모 등을 고려한 유력 언론사들의 노출도를 높이는 편집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또 충격적이게도 진보든 보수든 유력 언론사들의 기사가 포털의 메인 뉴스에 게재될 확률이 유사 언론이라 불리는 언론사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 모든 언론사를 ‘n분의 1’로 만들어 유력 언론사들의 브랜드 파워를 약화시키고 포털 의존도가 절대적인 언론사들을 하청업체화하는 편집 전략이다.

반면 해당 언론사 기사의 평균 댓글 수와 감정표현 수는 메인 뉴스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소위 ‘좌표’가 찍힌 기사들은 매크로를 활용한 댓글 생성과 추천수 조작으로 포털의 메인뉴스에 게재되어 노출이 극대화될 수 있다. 여기에 모든 뉴스 유통이 포털을 통해 이루어지니 국가 차원에서는 여론조작에 가장 취약한 뉴스 유통구조가 형성됐다. 뉴스 유통이 분산되기 전에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이유다.

지난주부터 포털들이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소위 ‘아웃 링크’ 방식을 선호하는지를 조사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는 평생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에게 준비기간도 없이 “내일 당장 감옥에서 나가겠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 “다수의 언론사들이 현 방식을 선호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론 언론사들도 더 이상 포털에 종속되는 대가로 연명해선 안 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선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고민조차 무의미하다. 언론시장의 기능을 복원시켜 주어야 한다.

20년에 걸친 현장실험은 끝났다. 20년 전 해외 학자들의 우려가 사실이었음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입증되고 있다.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때문이다. 포털은 민주주의와의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댓글난 폐지,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뉴스 판매와 포털 안에 모든 걸(뉴스와 댓글 등) 담아두고 고객을 유인하는 등의 ‘가두리 양식’을 전제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접어야 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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