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바그다디 제거[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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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지 8년 만에 이슬람국가(IS) 수장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제거됐다. 2011년 빈라덴 사살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똑같이 작전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다만 오바마는 백악관 상황실 정중앙 자리를 작전 지휘자인 육군 준장에게 양보한 채 점퍼 차림으로 구석 자리를 지킨 반면 트럼프는 정장 차림으로 정중앙에 황제처럼 앉아 있었다. 오바마는 빈라덴의 죽음이 확인되자 일요일 밤 12시 가까운 시간임에도 곧바로 이를 발표했으나 트럼프는 26일(현지 시간) 토요일 오후 9시경 중대 사건 발생이라며 궁금증만 자아내는 트윗을 날린 뒤 밤새 뜸을 들이다 일요일 아침에야 바그다디의 사망을 발표했다.

▷바그다디 제거 작전은 빈라덴 사살 작전의 속편을 보는 듯했다. 첨단기술과 정보력을 동원해 은신처를 찾아내고 특수부대가 무장헬기를 타고 적지를 날아 기습했다. 정확히는 빈라덴은 사살되고 바그다디는 도망치다 입고 있던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목숨을 끊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업적이 오바마보다 크다고 자랑하지만 역시 본편만 한 속편은 없다. 빈라덴 사살 발표 때 백악관 앞을 휩쓸었던 성조기의 물결도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가 바그다디에 대해 개에 쫓겨 울며 도망치다 겁쟁이처럼 죽었다는 식의 발언을 반복하는 것은 바그다디의 자살이 지지자들에게 영웅시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선전전으로 보인다. 바그다디의 제거가 빈라덴의 사살처럼 대(對)테러전에서의 주요한 진전이긴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조직의 붕괴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 테러조직의 특성상 지도자는 유고시를 대비해 후계자를 선정해 놓기 마련이다. 바그다디는 미군 공습 때 입은 부상과 당뇨 고혈압 등 지병으로 일찌감치 일상적인 지휘에서는 손을 떼고 물러나 압둘라 카르다시를 후계자로 세워 조직을 운영케 했다고 한다.

▷오바마는 재선 출마를 앞두고 빈라덴을 사살하는 성과를 냈음에도 재선에 이용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자랑하고 다니지 않았다. 역시 재선 출마를 앞둔 트럼프에게는 그런 겸손이 보이지 않는다. 미군의 때 이른 시리아 철수계획이 바그다디 측의 보안태세에 빈틈을 초래했다면 바그다디 제거는 뒷걸음질치다 얻어걸린 행운일 수 있다. 빈라덴 사후 궤멸하듯 하던 알카에다가 IS로 살아나듯 바그다디 사후 IS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트럼프가 자랑할 역량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역량을 발휘해서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알 바그다디#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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