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32>광명 충현박물관 이승규-함금자

  • 입력 2008년 6월 30일 02시 58분


“청백리 梧里정승의 꼿꼿함, 널리 전해야죠”

“내가 죽거든 절대 후하게 장사지내지 말고, 장지를 고르지 말고, 무당과 불가의 행사를 일절 쓰지 말고, 풍수가의 말은 신빙할 수 없으니 현혹되지 말고….”

청백리(淸白吏)로 알려진 조선시대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 선생이 살아 있을 때 후손에게 남긴 유서다.

이 유서를 비롯해 선생의 뜻이 담긴 수많은 글이 경기 광명시 충현박물관에 있다.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던 집을 후손이 단장해 박물관으로 꾸몄다. 전국에 많은 종가(宗家)가 있지만 정식의 박물관으로는 유일하다.

○ 종갓집 지키는 13대 종손 부부

이승규(68·충현문화재단 이사장) 박사와 부인인 함금자(68) 관장이 2003년에 세웠다.

이 박사는 오리 선생의 13대 종손.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신혼 때도 “종손이 집을 비울 수 없다”며 서울 신촌까지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했다. 함 관장은 간호학과에 진학한 뒤 이 박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캠퍼스 커플로 지내다가 학교를 졸업한 뒤 결혼했다.

두 사람은 종갓집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1999년 마무리되자 새 단장을 시작했다. 집을 수리하고 정원을 조성하고 전시관을 만들면서 30억 원이 넘게 들었다. 매년 박물관 운영과 관리에 드는 비용도 1억 원이 넘는다.

이 박사는 “너무 뒤늦게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해서 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남들은 바보 같다고 하지만 내게 남은 일은 바로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곳을 한국 최고의 전통박물관으로 만드는 계획이다.

○ 나무와 바위도 문화재

태종의 5대손인 오리 선생은 선조부터 광해군, 인조까지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지냈다.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꼽힌다. 문신이지만 임진왜란 때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벌였다.

충현박물관에 있는 관감당(觀感堂)은 인조가 오리 선생에게 내린 집이다. 방 2칸과 서재, 부엌으로 단출하다. 왕이 은퇴한 신하에게 내린 집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관감당 앞에는 오리 선생이 앉아서 거문고를 연주하던 바위(탄금암)와 수령 4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있다. 비록 건물은 없지만 충현박물관 중앙에 충현서원 터가 있다.

영우(影宇·오리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와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뜻의 풍욕대(風浴坮)도 눈길을 끈다.

전시관에는 보물 1435호로 지정된 이원익 영정을 비롯해 오리 선생의 글과 유품, 종가의 유물 등 1500여 점을 전시한다.

이 박사는 “영우와 종갓집, 서원, 정자, 묘가 한자리에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이곳 자체가 커다란 문화재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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