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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3>필리핀 톤도 파롤라 마을 돌보는 김숙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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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울지마 톤즈’ 빈민촌의 코리안]<3>필리핀 톤도 파롤라 마을 돌보는 김숙향 씨

동아일보입력 2012-01-11 03:00수정 2012-01-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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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마을’의 아이들에게 그녀의 공부방은 구원이었다 《 지난해 12월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20여 분 떨어진 톤도 파롤라 마을. 폭 1m 남짓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판잣집 수만 채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김숙향 씨(53·여)가 나타나자 주민들은 집에서 뛰어나와 반가운 목소리로 그의 영어 이름인 ‘샤론’을 외쳤다. 김 씨는 만나는 주민마다 유창하게 필리핀 현지어인 타갈로그어로 일일이 안부를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인 톤도 안에 형성된 이 마을에는 판자나 양철판 몇 개를 아무렇게나 덧대 곧 무너질 것 같은 7∼13m²(약 2∼4평)의 좁은 집이 3만여 채나 있다. 골목 안에 있는 집에서 손을 뻗으면 앞집 문에 닿는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강력범죄가 발생해 봉사자 대부분이 활동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 지역에서 김 씨는 12년째 일하고 있다. 마을 외곽에 세운 ‘톤도센터’에서 초등학생과 하이스쿨(중고교를 합친 개념)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헌신하고 있다. 》
○ 공부 포기하고 필리핀 땅 밟아

김숙향 씨(조끼를 입은 사람)가 지난해 12월 톤도 센터에서 열린 ‘학부모 교실’에 참석한 부모들과 함께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김 씨가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이 센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1주일에 한 번씩 학부모 교실을 열어 자녀 교육법, 일자리 구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광산을 3개나 소유한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김 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던 해 집안의 사업이 망했고 뒤이어 아버지가 타계하며 시련이 이어졌다. 혼자 5남매를 교육시키기 위해 ‘황소’라는 별명을 얻어가며 식당일을 하던 어머니도 1987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우울증에 빠져 세상을 탓하던 시절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800년대 영국에서 고아 수천 명을 거두어 교육시켰던 영국인 사회사업가 조지 뮬러에 관한 책이었다. 김 씨는 “어떤 이는 남의 불행을 어떻게 행복으로 바꿔 놓을지 고민하며 삶을 바쳤는데 나는 내 불행만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1990년 1월 신학대 교수를 꿈꾸던 그는 공부를 포기하고 31세에 홀로 필리핀으로 향했다.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오빠만 믿고 떠난 길이었다. 현지 보육원에서 청소와 빨래 등 허드렛일을 하며 3년을 지냈다.

○ 어느 날 다가온 전(前) 사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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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뒤늦게 사랑이 찾아왔다.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오던 필리핀인 목사가 사랑을 고백했다. 김 씨는 거절했다. 그는 폭력조직 두목 출신에다 살인교사 혐의 등 전과 34범이었다. 교도소에 복역할 때는 교도관 살인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복역 중 과거를 반성하고 특별 사면된 뒤 종교에 귀의해 목사가 됐다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과거였다.

게다가 김 씨는 독신으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고백이 이어지고 보육원 아이들과 아이처럼 순수하게 어울리며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에 반한 김 씨는 수백 번 고민한 끝에 1993년 그와 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은 뒤 2000년부터는 빈민촌으로 집을 옮겼다.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 쪽방에 방치되는 빈민촌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한 것. 마을 외곽에 있는 건물 일부를 빌려 아이 100명을 교육시키고 밥을 먹이며 본격적인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불행이 닥쳤다. 부부는 센터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닐라 북부의 농장을 빌려 메추리 수만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2008년 남편은 메추리알을 거두러 가야 한다며 새벽부터 차를 타고 농장으로 달려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 몸처럼 함께 봉사하던 남편이 떠나자 모든 걸 잃은 듯 좌절했지만 그는 곧 일어났다. 남편 몫까지 다해 아이들을 교육하려면 정신을 놓을 틈이 없다는 생각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2008년 기아대책의 후원이 시작됐다.

○ 470명의 아이들과 함께한 행복


지인들에게 어렵게 돈을 빌려 티셔츠 공장을 하던 건물을 인수했다. 그곳에서 아이 470명을 가르치고 있다. 센터 초기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오라 가라 하느냐”며 욕하던 부모들은 이제 센터에서 식사 제공 및 청소봉사를 하며 그를 돕고 있다. 빈민촌에서 자라 자존감이 없던 아이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 구석에서 기름등을 켜고 공부하는 모습에 부모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센터 출신 중 일부는 필리핀 최고 명문대인 국립필리핀대(UP)에 진학하고 정부 장학생으로 뽑혀 한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등 빈민촌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31세에 필리핀 땅을 밟아 어느새 53세가 된 ‘샤론’은 자신의 열렬한 팬이 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빈민촌 사람들과 함께한 12년을 두고 “삶을 정말 잘 선택한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그러나 특유의 초승달 모양 눈웃음 속에도 근심이 있었다. 이 마을 가구당 자녀가 4∼6명에 달하지만 후원자가 부족해 센터에 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를 모두 받을 수 없다. 아이들은 센터 앞을 서성이며 공부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센터에서 누군가가 밥 한 끼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표정은 밝게 변한다”며 “단돈 3만 원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쓰레기로 다져진 땅… 정부 “보기 싫다” 장벽 세워 ▼
■ ‘최악의 슬럼’ 파롤라 마을

빈민촌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 바닥’ 위에서 파롤라 마을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 마을 옆 파시그 강이 폭우로 범람하면 이 쓰레기 바닥은 물에 불어 온 동네를 ‘쓰레기 강’으로 만들어 버린다. 기아대책 제공
초등학교 오전반인 여자아이 에리카 알리호(8)는 낮 12시면 집에 돌아와 나무 손잡이가 달린 칼을 들고 엄마와 하루 종일 마늘을 깐다. 이렇게 버는 돈은 하루 50페소(약 1300원). 이마저도 수도와 전기가 없는 탓에 기름등에 넣을 하루치 기름과 물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알리호를 포함한 이 집 아이 네 명은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만 먹는 날이 많다.

이 가족은 A∼F구역으로 나뉜 파롤라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C구역에 산다. 마을에 새로 유입된 빈민들은 집을 지을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정착한 주민들이 수십 년간 내다버려 단단하게 쌓인 쓰레기 위에 집을 지었다. 폭우로 마을 옆 파시그 강이 범람하면 쓰레기 바닥이 물에 불고 약해져 온 동네가 ‘쓰레기 강’이 된다.

아이들은 톤도 인근 부촌에 사는 중국인들이 마을에 하청을 주는 마늘 까기를 하거나 벌레가 우글거리는 쓰레기 바닥에서 맨발로 뛰놀며 하루를 보낸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좁은 집은 대낮에도 암흑 상태여서 공부를 할 수 없다. 7∼13m²(약 2∼4평) 남짓한 집에 보통 한 가족 6, 7명이 거주하는 탓에 집에 들어가면 앉아 있기도 힘들다.

현재 이 마을 인구는 10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많은 인구가 자물쇠조차 없는 판잣집, 양철판 집을 빽빽이 지어놓고 모여 사는 탓에 절도사건도 빈번하다. 필리핀 정부는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며 외부에서 빈민촌이 보이지 않도록 장벽을 세워 가릴 뿐 사실상 마을을 방치하고 있다. 김숙향 씨는 “부모들은 살아가는 일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동원해 돈을 벌거나 이들을 그냥 버려둔다”며 “아이들은 바깥세상이 어떤지 알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마을에 갇혀 빈곤을 그대로 물려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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