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공정위는 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나
더보기

공정위는 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나

뉴시스입력 2019-09-08 07:11수정 2019-09-08 07:11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공정위, 표시광고법 고시 개정해
'가습기 살균제' 예시 추가하기로
2011년 사망자 발생 7년5개월 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안전과 건강에 있어 파수꾼 역할을 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했다. 차기 공정위 위원장으로 취임한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면밀히 검토하겠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조사 의지를 밝힌 뒤 3일이 지난 이달 5일, 공정위는 ‘표시광고법’(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고시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표시광고법은 상품에 붙은 라벨이나 광고에 적힌 문구를 관장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중심에 섰던 바로 그 법안이다.

공정위는 표시광고법 고시 개정안에 ‘소비자 흡입 제품의 라벨 표시·광고에 유해 정보나 위험성 경고 등을 은폐·누락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예시를 끼워 넣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파는 기업들이 상품의 유해성을 똑바로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6521명의 피해자와 1433명의 사망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시작된 지 7년5개월여 만에 내린 조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월 20~30대 산모 7명이 폐 질환으로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원인은 불명. 이 중 4명이 사망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8월 질병관리본부는 이들의 폐 손상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는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0월 피해자 가족 등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업체들을 조사해달라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주요기사

이후 공정위는 ‘안전한 성분을 사용한 것처럼 허위·과장 표시했다’며 옥시레킷벤키저 등 3개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애경산업·SK케미칼 2개 회사에 대해서는 ‘이들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용기에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가 없고 인체 유해성과 관련한 어떤 표시·광고도 없다’며 무혐의로 2012년 3월 조사를 마무리했다. 애경산업·SK케미칼은 두 번째로 많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만든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 판매한 회사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공정위가 법을 어겼다고 판단, 고발해야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다.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을 처벌할 수 있는 표시광고법은 ‘공정위 소관 법령’이고 이는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와 기소에 나설 수 있다.

공정위는 2016년 4월 착수한 재조사에서도 애경산업·SK케미칼에 면죄부를 줬다. ‘애경산업·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이 독성 물질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신고를 받고서도 ‘이들 제품의 인체 위해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8월 심의 절차 종료(추가 조처 없이 조사를 끝내는 것) 처리한 것이다. 4년이 지난 뒤 치른 두 번째 조사에서도 애경산업·SK케미칼에는 죄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2017년 9월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한 번 더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앞서 5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모든 후보자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철저히 재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이목이 다시 집중됐던 때였다. 8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하기도 했다.

세 번째 조사에서야 공정위는 애경산업·SK케미칼 제재안을 내놨다. 2018년 2월 공정위는 두 회사의 전직 임원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공정위의 고발장을 돌려보냈다. 공정위가 고발장을 잘못 썼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2017년 12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회사를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쪼갰다. 이때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았던 기존 법인의 이름은 SK디스커버리로 바꿨다. SK케미칼이라는 옛 이름은 분할해 새로 만든 법인에 붙였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팔지 않았지만 이름은 같은’ 새 법인 SK케미칼을 고발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를 정정하기 위해 검찰 공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를 다시 써 SK디스커버리에 보내고 심의를 다시 하는 등 우여곡절을 벌인 끝에 3월 SK디스커버리를 다시 고발했다.

그러나 애경산업·SK케미칼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서울지검이 공소시효(5년)가 만료됐다며 기소하지 않아서다. 서울지검은 ‘애경산업·SK케미칼의 공소시효가 2016년 9월 끝났다’고 했다. 공정위가 고발장을 내기 17개월 전에 이미 애경산업·SK케미칼에 형사 책임을 물을 근거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특히 이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은 공정위가 두 번째 조사를 시행한 뒤 위해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심의 절차를 허무하게 종료해버린 때의 한 달 뒤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쏟아졌다.

표시광고법과 관련한 공정위의 시도는 2018년 수포가 됐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환경부가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따른 건강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기로 함에 따라 피해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애경산업·SK케미칼은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보상을 미루고 있다.

공정위는 ‘가습기 살균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는 광고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무책임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가습기 살균자 피해자 모임 ‘너나우리’의 변호를 맡은 송기호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공정위는 두 번 잘못했다. 표시광고법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발생하도록 한 게 첫 번째,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가해 기업을 처벌하지 못하도록 한 게 두 번째다. 소비자들이 상품을 선택할 때 건강·생명·안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은 표시·광고뿐이다.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집어들게 한 곳도, 이들이 가해 기업으로부터 보상받지 못하게 한 곳도 공정위다.”

【세종=뉴시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