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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역사와의 대화]<13>세전서화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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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역사와의 대화]<13>세전서화첩

입력 2004-08-09 18:35수정 2009-10-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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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장사전별도의 왼쪽 아랫부분을 확대한 그림. 장발에 피부색이 검게 그려진 포르투갈 병사들(海鬼)의 모습이 이채롭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의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은 제작 동기가 문벌(門閥)을 중시하던 조선 후기의 양반문화와 관련 있다.

이 화첩은 경북 안동시 미동에서 500년을 세거해 온 풍산 김씨 문중에 대대로 전승돼 온 사료다. 화첩은 풍산 김씨 10세 김휘손(金徽孫) 이래 10대에 걸쳐 청백 충효 절의 문장으로 이름을 드러낸 19명의 주요 행적을 그린 것으로, 31도(圖)의 화폭과 이를 설명하는 시문으로 이뤄져 있다. 그림마다 우측 상단에 표제가 적혀 있으며, 관련 일화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뒤편의 발문에 따르면 이 화첩을 편집한 사람은 19세기 전반에 참봉을 지낸 김중휴(金重休)라는 인물이다.

인물과 산수의 표현에 나타난 필치와 묘사가 그림마다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첩은 동일시기에 제작된 것이 아닌 듯하다. 집안에 전해지던 원본을 토대로 하되, 없어진 것은 첩을 꾸밀 당시 옮겨 그리거나 새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여러 대에 걸친 가계의 인물이 소재라는 점에서 이 화첩은 전기(傳記)적 기록화의 성격도 띤다.

화첩 가운데 재미있는 것으로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餞別圖)’가 있다. 1599년 2월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왔던 명나라 군대가 철수할 때 훈련원에서 베푼 연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당시 명나라 병부상서 형개(邢개)가 자신들이 철군하는 모습을 그려줄 것을 청하자 조정은 이름난 화원이었던 김수운을 시켜 그림을 그려 주었는데, 형개는 이 그림을 다시 자신을 접대하던 조선의 관원 김대현(金大賢·1553∼1602)에게 선물로 주었다. 김대현은 풍산 김씨 미동파의 중흥조로서, 아들 8명 중 5명을 문과에 급제시킴으로써 풍산 김씨가 명문(名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인물이다.

그림은 네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고수와 배우가 거리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연회의 흥을 돋우는 모습과 동서로 갈라져 군문을 향해 경례하는 행렬의 모습 등이 두루 보인다. 또 마지막 장면 좌측 하단에 ‘해귀(海鬼)’라고 지칭된 검은 피부의 병사들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소수의 포르투갈 용병이 명나라 군사와 함께 참전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다.

문중의 격을 높이고 위상을 홍보하는 일에 이런 화첩이 동원된 이유는 아마 아녀자들에게까지 내용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그림의 교육적 효용성 때문인 듯하다. 후손들은 이런 교재들을 통해 조상과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임 노 직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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