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美 정치판 흔드는 청년 유권자 파워
더보기

美 정치판 흔드는 청년 유권자 파워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0-01-30 03:00수정 2020-01-30 14:17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글로벌 현장을 가다]
‘선거의 해’ 맞아 청년 표심 구애… 소셜미디어 통해 폭발적 결집력
청년 목소리 반영하는 정치 체계, 인턴 등 폭넓은 정치 참여 기회도
미국 정치인들은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폴 고사 공화당 하원의원(왼쪽·애리조나)이 이달 초 자신의 사무실을 방문한 한국계 미국 학생들과 만나 지역구 현안, 올해 대선 전망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lee@donga.com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이달 초 미국 워싱턴의 하원 건물인 ‘롱워스 빌딩’ 2층 회의실. 50여 명의 한국계 미국 대학생이 대회의실을 차지했다. 이들 앞에 미 의회의 지한파 인사로 유명한 인도계 아미 베라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민주·캘리포니아)이 나타났다.

베라 의원은 “이민자 후손인 저와 여러분 모두 미국 역사의 어엿한 한 부분입니다. 저처럼 미 연방의회 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세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나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남학생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베라 의원의 강연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동안 중국계 주디 추(민주·캘리포니아), 롭 우돌 의원(공화·조지아)이 속속 도착해 다음 강연을 준비했다.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민주·워싱턴)은 보좌관을 보내 연설을 맡겼다. 소속 정당, 지역구, 성별, 인종이 각각 다른 의원들이 한국계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콧대 높은 워싱턴 정치인들이 한국 특파원인 기자는 물론이고 미국 언론인에게도 짧은 인터뷰 시간조차 내주지 않는 모습을 종종 봐왔기에 더 그랬다.



이날 행사는 미국 최대 한인유권자 네트워크인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가 주최한 2박 3일의 ‘한인대학생 대표자 회의’ 중 학생들과 의원들이 함께하는 리셉션이었다. 미 22개 주, 39개 대학에서 선발된 한인 학생들을 만나러 온 의원들은 각자 자신의 지역구에서 온 학생들과 따로 기념사진을 찍는 치밀한 모습을 보였다.

주요기사

○ 한인 청년에게 주목하는 미 정치인

이날 리셉션에 참가한 학생들은 자신의 지역구 의원 사무실로 찾아가 의원 및 보좌진과 만났다. 자신들의 관심 사항, 지역구 현안은 물론이고 최근 한인 사회가 추진하는 ‘입양아 시민권 법안’에 대한 지지도 요청했다. 미국으로 입양된 후 부모의 이혼이나 학대 등으로 시민권을 신청하지 못한 약 2만 명의 한인 입양아에게 시민권을 주자는 운동이다.

이들을 만난 길 시스네로스 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지역구뿐 아니라 미국의 대표로 이 자리에 있다. 이민,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 달라”고 격려했다.

1.5세대 미국인으로 올해 두 번째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는 제이슨 유 씨(하버드대)는 “처음 참가했을 때 쟁쟁한 유명 정치인과 보좌관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감격해서 울 뻔했다. 아직 미국 사회에서는 소수계인 한국계 젊은이들의 활동이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흥분했다”고 말했다.

올해 11월 3일 미국인들은 4년간 백악관 주인이 될 새 대통령을 뽑는다. 동시에 이날 하원 435석 전체, 상원 100석 중 35명의 주인도 결정된다. 2년 임기의 미 하원의원은 매번 435명 전원,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은 2년마다 전체의 약 3분의 1을 교체한다.

현재 하원 다수당인 야당 민주당과 상원 다수당인 집권 공화당은 대선 승자 못지않게 상하원 선거를 이기기 위해 필사적이다. 특히 지역구가 걸린 현역 의원들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송원석 KAGC 사무국장은 “올해가 ‘선거의 해’인 만큼 지역구 청년들의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노력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 등으로 미 청년 유권자(만 18∼29세)의 투표 참여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도 젊은 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정치인의 욕구를 자극한다. 미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년 유권자의 2018년 11월 중간선거 참여율은 36%. 4년 전 20%보다 16%포인트 올랐다.

청년 유권자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짧은 시간 안에 공유된 의견을 모으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달 3일 미군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드론으로 공개 사살한 직후 미 전역 70개 도시에서 즉각 반전 시위가 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란과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일각에서 징집을 거론하자 강력히 분노를 표했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 반대’ ‘전쟁은 재선 전략이 아니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했다. 당시 반전 시위에 참여했다는 한국계 레베카 권 씨(21·조지워싱턴대)는 “주변에도 사회 현안에 관심이 큰 친구들이 많다. 여성 인권, 이민 관련 시위에 종종 함께 나간다”고 말했다.

○ 대선 주자도 ‘러브콜’

청년 표심을 잡으려는 대선 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 주요 후보들은 전폭적인 학자금 지원은 물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여러 공약으로 경쟁하고 있다.

뉴욕 컬럼비아대 학내 신문 ‘컬럼비아 스펙터’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을 지지하는 학생 모임이 각각 조직됐다. 워런 의원 지지자인 소피 스핑크 씨는 “그가 기후변화와 학자금 부채 감축,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79세인 샌더스 후보는 민주당 주요 대선 주자 중 최고령이다. 하지만 그는 공립학교 무상교육, 부유세 도입 등 청년 세대가 좋아할 만한 공약으로 청년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중장년층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청년들에게 “당신의 부모 및 조부모를 설득해서 나를 찍도록 하라”는 캠페인까지 펼쳤다.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및 12월 성탄절 연휴를 앞두고 미 주요 대학에는 ‘버니를 지지하는 학생들을 위한 부모 설득 가이드’란 전단이 배포됐다.

조지워싱턴대의 정치 모임 회원들은 다음 달 3일 양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일정인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코커스)를 직접 관람하기 위해 아이오와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대선 풍향계 성격의 아이오와 코커스를 직접 보면서 ‘내가 찍을 후보를 현장에서 고르겠다’는 이들의 의지가 담겼다. 또래 집단과 미 곳곳을 누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에게는 유희의 대상이기도 하다.

○ 이민, 총기 등 현안에 적극 관여

이달 초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가 미국 워싱턴에서 주최한 ‘한인 대학생 대표자 회의’에 참석한 한국계 미국 학생들이 소그룹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청년들의 관심도 뜨겁지만 미국 사회 역시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50개 주마다 각각 청년 위원회를 두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 전용 프로그램도 따로 운영한다. 주요 대학 안에도 민주당 학생회, 공화당 학생회 조직이 존재한다. 뉴욕대 민주당 학생회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유명 정치인을 연사로 초청하거나 현안을 토론하는 모임을 가진다.

워싱턴 연방의회, 각 주 의회에도 대학생들의 인턴 활동을 보장하는 여러 제도가 있다. 레베카 권 씨는 최근 대만계 그레이스 멍 하원의원(민주·뉴욕)의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의원 사무실에도 또래 대학생 인턴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젊은 세대가 이민, 인권, 인종차별, 총기, 기후변화 같은 사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내내 지속된 반이민 정책, 인종주의 논란은 미 전역의 대학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폐지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미성년 입국자 추방 유예(DACA·다카) 제도가 대표적이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와 사는 젊은이들의 추방을 미뤄 주겠다며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약 80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미국 밖으로 쫓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다카 수혜자들을 ‘드리머(DREAMer)’라고 한다. 2001년 불법체류 청년들을 위한 구제 법안 ‘The 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의 머리글자를 땄다. 합법적으로 미국에 오진 않았지만 사실상 평생을 미국인으로 살아온 청년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일구라는 뜻도 담겼다. 주로 중남미에서 온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며 한국, 필리핀계도 상당수다. 지난해 11월 연방대법원에서 열린 다카 소송 첫 공개변론에는 각지에서 이를 참관하기 위해 온 대학생 방청객이 넘쳐났다. 이들은 아침부터 대법원 앞에서 줄을 서며 기다렸다. 상당수는 ‘우리 모두가 드리머’란 팻말을 들었다.

급증하는 총기 사고로 성장 과정에서 이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청년들은 총기 규제 운동도 적극 주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학생단체 ‘총기규제를 위한 미 학생연대(SDA)’는 주 의회를 상대로 규제 강화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SDA에서 활동하는 마르코 바가스 씨(다트머스대)는 “우리가 노력하면 가족과 친구가 총기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


#선거의 해#청년 유권자#미주한인유권자연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