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기준선 밖의 ‘인천 일가족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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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엄마-20대 자녀 극단선택… 심각한 신체질환 없었지만 경제난
작년 주거급여 긴급지원금 받기도… 정신적 어려움이 직접 원인 가능성
‘찾아가는 상담’ 등 제도 보완 필요

성북나눔의집 등 67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가 21일 서울 성북구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앞에서 복지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달 2일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빚에 시달리던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성북나눔의집 등 67개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가 21일 서울 성북구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앞에서 복지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달 2일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빚에 시달리던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9일 인천 계양구에서 일가족을 포함한 4명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빚에 시달리던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지 17일 만이다. ‘인천 일가족’ 중엔 ‘성북구 네 모녀’처럼 한창 일할 나이인 20∼40대 구성원이 있었다. 신체질환으로 장애등급 판정을 받은 구성원은 없었다. 대다수의 정부 지원금 제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복지서비스의 기준선 밖에 있는 저소득층에게 ‘찾아가는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계양구 동양동의 한 임대아파트 복도엔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붙어 있었다. 이 아파트에선 이틀 전 A 씨(49·여)와 아들(24), 딸(20) 등 두 자녀, 그리고 딸의 친구 B 양(19)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 가족을 잘 아는 인근의 한 상점 주인은 “A 씨는 가게에 들를 때마다 얼굴에 그늘이 있었다”고 했다.

계양구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손떨림 증상으로 실직했다. 같은 해 10월 주민센터에 들러 기초생활 주거급여(월 24만 원)와 한시적 긴급복지 지원금(월 93만6500원)을 신청해 받게 됐다. 긴급복지 지원금은 3개월 만에 끊겼다. 당시 주민센터 관계자는 기초생활 생계급여 제도도 안내했지만 A 씨는 “생각해보겠다”고만 하고 신청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A 씨와 두 자녀가 모두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부양의무자’인 전남편과 친정 부모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면 주민센터의 제안을 받아들여 월 최대 112만8010원(3인 가구 기준)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있었다. A 씨는 어지럼증으로 한의원을 종종 찾았고 그의 아들은 제대 후 직장에 다니다가 몸이 안 좋아 실직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장애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복지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2월)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A 씨 가족은 이미 한부모 가정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발굴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실제로 관할 주민센터는 A 씨 가족을 사례 관리 대상에 포함시켜 성금이나 기부 물품, 장학금 등을 전달해왔고 A 씨의 딸도 주민센터에 직접 들러 통신요금 감면을 신청하곤 했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A 씨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엔 신체질환이나 생계곤란 못지않게 정신적 어려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따르면 A 씨 가족이 우울증 상담을 받거나 서비스 대상으로 등록된 적은 없다. 이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업무가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226곳(2017년 말 기준) 가운데 중증 정신질환을 관리하는 곳은 218군데이지만 자활사업을 수행하는 센터는 81곳에 불과했다. 이런 경향은 올 4월 경남 진주시에서 중증 정신질환을 앓던 안인득이 방화, 살인을 저지른 뒤로 더 심해졌다.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A 씨 가족처럼 생계가 어려워 긴급복지 지원금을 받다가 끊기면 ‘정신건강 위기가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상담사가 찾아갔으면 좋았겠지만, 현재는 그런 제도가 미비하다”라며 “내년엔 관련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엔 ‘성북구 네 모녀’를 위한 시민분향소가 차려져 조화를 바치고 향을 피우려는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천=김소영 ksy@donga.com / 조건희·위은지 기자
#인천 일가족 비극#정부 지원금 제도#찾아가는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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