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박항서 매직…베트남, 60년 만에 동남아시안게임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1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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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60년 만에 동남아시아(SEA)경기 남자 축구 우승을 차지한 ‘쌀딩크’ 박항서 감독(60)과 선수들을 태운 특별기가 도착했다. 금의환향한 그들을 보기 위해 붉은 옷을 입고 공항을 찾은 수많은 베트남 축구 팬들은 “베트남! 보딕(챔피언)!” “박항세오, 생큐(박항서 감독님 감사합니다)!”를 쉴 새 없이 외쳤다. 꽃다발을 받은 박 감독은 환하게 웃었다. 전날 밤부터 시작된 베트남의 축제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0일 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숙원이었던 SEA경기 우승이 확정되자 베트남 전역이 들썩였다. 이 순간을 일간 베트남뉴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60년 만의 꿈을 이룬 온 국민들이 황홀감에 빠졌다.”


강렬한 ‘디바오’(베트남 축구팬들의 길거리 세리머니)였다. 온몸에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두른 이들은 오토바이나 자동차에 올라 경적을 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도시를 휩쓸었다. 박항서 감독의 초상화나 태극기를 흔들며 눈시울을 붉힌 이들도있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또 한번 진한 감동을 안기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 대표팀은 이날 필리핀에서 열린 SEA경기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완파하고 60년 만에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노이와 호찌민 등에서는 수천 명이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 거리 응원을 펼쳤다. 하노이 여행 중인 박진호 씨(33)는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만 보면 하이파이브를 했다. ‘박항서, 최고’라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교, 병원 등에서도 단체 응원전이 펼쳐졌다. 징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TV 앞에 모여 응원을 했다. 대표팀 축구가 최고의 치료제였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인 부두이뚱 씨(27)는 “우리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고 ‘파파(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챙기는 박 감독은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발 마사지를 직접 해주고, 실수한 선수에게 질책보다 격려를 하는 ‘파파 리더십’으로 베트남을 사로잡았다.

박 감독은 결승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3점 차로 앞선 후반 33분 상대의 거친 몸싸움에 반칙을 선언하지 않는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것. 베트남 언론은 “박 감독은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닭과 같았다”고 보도했다.

축구에서 크게 앞선 팀 감독이 항의 끝에 퇴장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 감독은 “3-0으로 앞서자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려고 더 강력히 항의했다. 솔직히 퇴장까지 줄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박 감독과 선수들은 11일 귀국 후 총리 관저를 찾아 철갑상어, 치킨 카레, 새우 요리 등으로 구성된 만찬을 가졌다. 선수들이 버스를 타고 관저로 이동하는 동안 오토바이, 트랙터 등을 탄 팬들이 뒤를 따라가며 응원을 보냈다. 포상금도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베트남뉴스에 따르면 베트남 축구협회가 30억 동, 문화체육관광부가 10억 동의 포상금을 내놨다. 민간기업 후원금을 합하면 105억 동(약 5억4000만 원)이 넘는 포상금이 모였다.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근로자의 1인당 월평균 수입은 320만 동(약 16만5000원)이다. 박 감독은 “‘베트남 정신’(단결, 투지 등)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선수들이 팀과 자신을 믿고 국민의 성원에 보답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국가대표팀(A대표팀)과 22세 이하 대표팀을 모두 맡고 있는 박 감독은 2017년 10월 부임 후 동남아선수권 우승 등을 이뤄내며 베트남 축구를 동남아 최강으로 키웠다. 이런 성과 속에 박 감독은 지난달 역대 베트남 감독 가운데 최고 대우인 연봉 60만 달러(약 7억1600만 원·추정)에 최장 3년 임기의 재계약을 했다.


박 감독은 여전히 배가 고픈 듯하다.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22세 이하 대표팀)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A대표팀)을 노린다. 둘 모두 베트남 축구가 한 번도 이뤄낸 적이 없는 일이다. 박 감독은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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