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세계육상대회 출전 꿈 이룬 ‘장애인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의 위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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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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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신발을 신고, 난 의족을 신는다… 차이는 그것뿐”

의족을 벗은 채 침대에 앉아 있는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일상에서는 다리 모양의 의족을 신지만 달리기를 할 때는 알파벳 ‘J’ 모양의 의족을 착용하고 뛴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의족을 벗은 채 침대에 앉아 있는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일상에서는 다리 모양의 의족을 신지만 달리기를 할 때는 알파벳 ‘J’ 모양의 의족을 착용하고 뛴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라커룸에 들어온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프리카공화국)는 두 다리를 떼어냈다. 탄소 섬유로 만들어졌고 바닥에 스파이크가 박혀 있는 알파벳 ‘J’ 모양의 의족. 그에게 ‘블레이드 러너’라는 별명을 붙여준 물건이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다른 다리를 끼웠다. 피부와 같은 색깔에 발가락이 달려 있어 운동화도 신을 수 있는 의족.

육상 트랙을 벗어난 그에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그의 다리는 여러 개다. 몸이 성장하면서 버린 다리도 많고, 부서지고 깨져서 쓸 수 없게 된 다리도 많다. 그러나 모두 물건일 뿐. 그는 ‘다리 없는 스프린터’다. 1986년 11월 22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구시가지 북쪽 샌드턴에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종아리뼈가 없었다. 양다리 끝에 2개씩 붙어 있던 발가락은 그가 걷는 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생후 11개월이 됐을 때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한 살 때부터 의족은 몸의 일부가 됐다. 그의 부모는 남들과 다른 몸을 가진 피스토리우스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워줬다.

의족을 단 피스토리우스는 또래 누구보다 용기 있고, 빠르고, 승부욕이 강했다. 고교생이 됐을 때 그는 만능 운동선수였다. 2003년 럭비를 하다 무릎을 크게 다쳤지만 재활을 위해 시작한 육상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004년 아테네 장애인올림픽은 18세에 불과했던 그를 장애인체육의 스타로 만들었다. 200m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부모의 사려 깊은 교육 방식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장애를 느끼지 못했던 피스토리우스가 비장애인들과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피스토리우스의 그런 생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엄연히 장애인 대회가 따로 있는데 실력도 되지 않으면서 비장애인 대회에 도전하는 데는 상업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오던 그를 처음 좌절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의족이었다. 2008년 1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독일 쾰른대 생체역학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그의 의족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기술적 장비라고 판단해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출전을 제한했다. 탄성이 뛰어난 의족 덕분에 비장애인보다 산소 소비량을 줄이고 스피드를 높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피스토리우스는 낙담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IAAF가 나를 올림픽 무대에 초대해 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스포츠는 나이와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지킬 수 있다.”

그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했고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과학적인 증거를 도출해냈다. 피스토리우스의 변호인들은 “종목 특성상 400m를 달리는 능력은 산소 소비량과 큰 상관이 없고 오히려 그의 의족은 발목을 사용해 뛰는 비장애인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결국 CAS는 피스토리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제도적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A기준기록을 넘지 못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피스토리우스의 꿈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20일 이탈리아 북부 리냐노에서 열린 육상대회 남자 400m에서 그는 45초07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의 최고기록(45초61)을 0.54초나 앞당기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A기준기록(45초25)을 가뿐하게 통과했다. 이틀 전 이탈리아 파도바 대회에서 세운 45초65보다 0.58초나 빨랐다. 이틀 만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외신은 “4개의 패럴림픽 금메달을 딴 25세 피스토리우스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첫 장애인 스프린터가 됐다”고 전 세계에 타전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경기 뒤 트위터에 ‘대구 대회 출전권을 딴 이 밤, 45초07을 기록해 A기준기록을 넘었다. 믿기지 않는다. 너무 행복해 잠을 잘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올해 5월 1일 이후 세운 기록은 내년 런던 올림픽까지 유효하기 때문에 피스토리우스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런던 올림픽 출전의 길도 열렸다.

피스토리우스의 400m 기록은 최근 상승세가 뚜렷하다. 2008년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딸 때만 해도 47초49에 그쳤던 그는 올해 3월 45초61을 끊으며 B기준기록(45초70)을 넘은 뒤 4개월 만에 A기준기록까지 통과했다. 20일 현재 남자 400m에서 올 시즌 최고 기록 베스트5에 오른 선수들은 모두 44초대 기록을 갖고 있다. 아직 45초의 벽을 넘지 못한 피스토리우스가 메달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늦여름 대구스타디움에서 피스토리우스는 다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피스토리우스의 머릿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어머니의 말이 있다. 그는 요즘도 힘들 때면 이를 떠올린다. “너와 (장애가 없는) 형의 차이점은 딱 하나야. 매일 아침 형은 신발을 신고, 너는 의족을 신는다는 거지. 단지 그것뿐이야.”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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