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혔던 주택대출 창구 다시 열린다

  • 입력 2009년 6월 15일 02시 59분


은행들 경기회복 기대감에 너도나도…
가계부채 859兆… 금융불안 우려도

#1. 4월 초 회사원 장모 씨(35·서울 마포구)는 3년 전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던 A은행에 추가 대출을 신청했다가 “저축은행을 이용하라”는 말을 들었다. 본점이 가계대출을 줄이라고 독려하고 있어 집을 담보로 돈을 더 빌리려면 2금융권을 통하는 게 쉽다는 조언이었다.

#2. 6월 초 장 씨는 A은행 대출 담당자로부터 “이제 추가대출이 가능하니 필요하면 신청해도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담당자는 “부실 가능성이 줄어 본점 차원에서 대출영업을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 리스크 관리를 위해 가계대출 규모를 대폭 줄였던 은행들이 최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 연체율이 낮아진 데다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과거처럼 과당경쟁을 하면 부실이 다시 불어나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가계대출 다시 확대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6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영업의 방향을 ‘긴축’에서 ‘확장’으로 조정했다. 이 은행은 1분기(1∼3월)에 여신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위기에 취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다른 은행에서 빌린 대출을 갚기 위한 대출을 취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가계대출 목표를 초과한 지점이 신규 대출을 하려면 영업점장이 본점에 대출 이유를 보고토록 하는 방법으로 몸집을 줄였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4월부터 급격히 줄었고 5월에는 심지어 795억 원 감소하자 경영진이 영업을 다시 정상화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재개에 따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이른바 ‘빅4’에 속하는 다른 은행들도 대출 영업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수도권 아파트 분양이 지금처럼 잘되고 기존 주택의 거래가 계속 늘면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자제하는 동안 한 달에 수천억 원씩 대출을 늘려왔던 중형 은행들은 신용대출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신용대출 금리를 최고 0.2%포인트 인하하는 한편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할 대출 상담사를 모집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하반기에 신용도가 낮은 서민층을 대상으로 대출을 늘릴 예정이며, 농협은 2분기 실적이 나오는 대로 지역 및 산업별로 차별화한 가계대출 정책을 수립해 대출 규모를 전반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 과당경쟁-부실 가능성

은행들의 이 같은 변화는 올해 초 0.8%를 훨씬 넘었던 가계대출 연체율이 최근 0.7%대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점도 은행들이 영업 전략을 공격적으로 수정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가 지난해 말 현재 859조 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84%에 이른다는 점 때문에 은행들의 가계대출 확대 추세가 전체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가계가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 50.9%로 미국(34.9%)에 비해 16%포인트나 높다. 예금이나 펀드 등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에 비해 빚이 너무 많아 금융위기 상황에서 ‘여신 대거 회수→부동산 등 실물자산 처분→실물가격 급락’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의 레버리지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늘어 금융회사가 부실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때에 대비해 부채 증가속도를 면밀히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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