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남자는 ‘결코’ 여자를 이길 수 없다

  • 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정미경은 그의 소설집 ‘내 아들의 연인’에 실린 단편 ‘너를 사랑해’에서 ‘어떤 남자도 여자들과 싸워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50 평생 중 40년가량을 남성우월주의 풍토에서 살아온 세대지만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요즘 한국 가정과 직장에서 여자들과 싸워 이기는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집안 권력 바꾸고 직장서 대약진

지난 10년 동안 한국 여성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가정에서의 권력교체에 성공했고, 직장과 학교에서의 대약진에 성공했다. 가정에서 찬밥 더운밥 가리는 남자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직장에서 여성에게 찍힌 남성은 출세의 꿈을 접어야 한다. 이 같은 성취는 세계 여성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로 나는 인식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나이별로 남자가 이혼당하는 이유’가 있다. 20대는 재미있게 안 해 주면, 30대는 지금 집에 들어가니 밥 해 놓으라고 하면, 40대는 무슨 일이든 꼬치꼬치 물으면, 50대는 여자 나가는 데 따라나서면, 60대는 살만 닿아도 이혼이란다. 압권은 70대다. 살아 있기만 해도 이혼이란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험한 세상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 남편을 존중해 줌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는 지혜로운 아내들이 ‘아직은’ 있기 때문이다.

평소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60대 최고경영자(CEO) 한 분은 요즘도 출근 때마다 아내가 볼에 입맞춤을 해준다고 한다. 후배들이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내가 누구 때문에 아침부터 직장에 나가 일하는데 그 정도도 안 해주느냐”고 반문했다. “평생 돈 걱정 안 하게 해주셔서 그런 것 아니냐”고 딴죽을 걸었더니 “공무원 시절 단칸방에 살 때부터 그랬다”고 일축했다. 이후 모임에서 그분의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K는 동갑내기와 초혼에 실패해 나이 차이가 있는 의사와 재혼했다. 똑 부러지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K의 휴대전화에 남편의 전화가 걸려오면 ‘주인님’이란 호칭이 뜬다. K가 그렇게 입력해 놓은 것이다. 티격태격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첫 결혼과 달리 그는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판사 대표인 친구 H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아무 말 없이 해외 출장을 떠나면서 공항에 도착해서야 “나 지금 외국에 간다”고 말할 정도다. 아내는 남편이 외출하자고 하면 언제든 ‘화장도 고치지 않고’ 선뜻 따라나선다. 피부과 의사 N의 아내는 결혼 25주년이 되었지만 아침에 화장 안 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편을 맞은 적이 없다고 한다.

남편의 엄마가 된 현명한 아내들

가족과 떨어져 지자체 부시장을 하고 있는 친구 L의 아내는 매 주말 남편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차를 몰아 두 시간을 달려간다. 남편이 임지를 비우고, 운전하느라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자신이 다녀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동창들이 방문했더니 부인이 손님 접대를 위해 와 있었다. 친구들이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그는 “내 종교는 남편이고, 나는 내 남편의 엄마예요”라는 말로 우리들을 감동시켰다. 결혼 초기에는 갈등도 많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여자들과 싸워 ‘결코’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성은 결코 남성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현명한 아내는 세월이 흐를수록 철딱서니 없어지는 이 세상 모든 남편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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