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권력 바꾸고 직장서 대약진
지난 10년 동안 한국 여성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가정에서의 권력교체에 성공했고, 직장과 학교에서의 대약진에 성공했다. 가정에서 찬밥 더운밥 가리는 남자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고, 직장에서 여성에게 찍힌 남성은 출세의 꿈을 접어야 한다. 이 같은 성취는 세계 여성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극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로 나는 인식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나이별로 남자가 이혼당하는 이유’가 있다. 20대는 재미있게 안 해 주면, 30대는 지금 집에 들어가니 밥 해 놓으라고 하면, 40대는 무슨 일이든 꼬치꼬치 물으면, 50대는 여자 나가는 데 따라나서면, 60대는 살만 닿아도 이혼이란다. 압권은 70대다. 살아 있기만 해도 이혼이란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런 험한 세상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다. 남편을 존중해 줌으로써 더욱 빛을 발하는 지혜로운 아내들이 ‘아직은’ 있기 때문이다.
평소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60대 최고경영자(CEO) 한 분은 요즘도 출근 때마다 아내가 볼에 입맞춤을 해준다고 한다. 후배들이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내가 누구 때문에 아침부터 직장에 나가 일하는데 그 정도도 안 해주느냐”고 반문했다. “평생 돈 걱정 안 하게 해주셔서 그런 것 아니냐”고 딴죽을 걸었더니 “공무원 시절 단칸방에 살 때부터 그랬다”고 일축했다. 이후 모임에서 그분의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K는 동갑내기와 초혼에 실패해 나이 차이가 있는 의사와 재혼했다. 똑 부러지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K의 휴대전화에 남편의 전화가 걸려오면 ‘주인님’이란 호칭이 뜬다. K가 그렇게 입력해 놓은 것이다. 티격태격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첫 결혼과 달리 그는 요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출판사 대표인 친구 H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아무 말 없이 해외 출장을 떠나면서 공항에 도착해서야 “나 지금 외국에 간다”고 말할 정도다. 아내는 남편이 외출하자고 하면 언제든 ‘화장도 고치지 않고’ 선뜻 따라나선다. 피부과 의사 N의 아내는 결혼 25주년이 되었지만 아침에 화장 안 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편을 맞은 적이 없다고 한다.
남편의 엄마가 된 현명한 아내들
가족과 떨어져 지자체 부시장을 하고 있는 친구 L의 아내는 매 주말 남편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차를 몰아 두 시간을 달려간다. 남편이 임지를 비우고, 운전하느라 신경을 쓰느니 차라리 자신이 다녀오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동창들이 방문했더니 부인이 손님 접대를 위해 와 있었다. 친구들이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서 그는 “내 종교는 남편이고, 나는 내 남편의 엄마예요”라는 말로 우리들을 감동시켰다. 결혼 초기에는 갈등도 많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여자들과 싸워 ‘결코’ 이길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여성은 결코 남성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현명한 아내는 세월이 흐를수록 철딱서니 없어지는 이 세상 모든 남편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