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정열]“불법업주 빼놓고…” 강남署이상한 간담회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17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경찰서 강당에는 정영호 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과 안마시술소, 단란주점, 노래방 등 관내 업소 대표 등 200여 명이 속속 모였다.

최근 불법안마업체와 유착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진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 2명이 파면당한 직후에 강남서에서 마련한 ‘부조리 근절과 풍속업소 자정을 위한 간담회’였다.

간담회는 유착 의혹을 보도한 TV 시사프로그램 시청, 업종 관계자들의 애로 및 건의사항 청취, 부조리 근절 의지와 업체의 자정 노력을 당부하는 정 서장의 발언 순서로 진행됐다.

정 서장은 “부하 직원들의 비리와 부조리로 인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앞으로 부하 직원의 비리는 내가 책임을 지고 근절시키겠으니 여러분도 경찰에게 (뇌물을 주려는) 유혹의 손길을 끊어 달라”고 당부했다.

비리 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강남 경찰의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정 서장의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허술한 점도 적지 않았다. 업소 측 참석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번 뇌물 수수 사건의 발단이 된 불법 안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과 이들을 부축하기 위해 함께 온 도우미들이었다.

노래방, 단란주점 업종의 참석자들도 상당수가 업종별 협회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간담회 참석 요청을 받았다고 기자에게 귀띔해 줬다. 한 참석자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런 자리에 오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관련 협회 지부에서 자리 좀 채워달라는 연락이 와서 참석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업소 관계자들의 발언도 “좋은 자리를 마련해줘 고맙다”거나 “단속할 때 선량한 업소가 피해보지 않게 해 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첫 발언자로 나선 참석자는 “정 서장의 관운이 활짝 열리기를 기원한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간담회를 마치고 경찰서를 빠져나가던 시각장애인 안마사 A 씨는 “불법 업주들은 다 빠지고 선량한 업주들만 모아놓고 ‘경찰에게 뇌물 주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찰청장 교체에 따라 경찰서 현관에 걸려있던 ‘경찰이 새롭게 변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현판이 철거됐다. 현판은 사라졌지만 거기에 적힌 문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우정열 사회부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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