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조치 3주… 다운계약서 다시 ‘고개’

  • 입력 2008년 11월 28일 03시 03분


시장 침체로 프리미엄 기대 못하자 “양도세라도 줄이자”

《내년 초 결혼을 앞둔 회사원 송모(29) 씨. 최근 입주를 앞둔 아파트 분양권을 사려고 서울 은평구의 한 중개업소를 찾았다가 “다운계약서를 쓰자”는 말을 들었다. 분양권 가격을 1000만 원 깎아줄 테니 계약서에 쓰는 거래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적자는 제안. 서울 강남, 서초, 송파구를 뺀 수도권 전 지역이 이달 7일부터 투기과열지구에서 풀렸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권을 자유롭게 팔 수 있게 된 지 20일째인 27일.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점검을 해본 결과 분양권 거래가 되살아나는 가운데 불법인 다운계약서 매매관행도 함께 고개를 들고 있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웃돈(프리미엄)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매도자들은 양도세라도 줄여 이득을 보려 하고, 매수자들은 좀 더 싸게 사려고 다운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

○ “실거래가 신고 땐 남는 게 없어”

송 씨가 소개받은 매물은 5억5000만 원에 분양된 136m²(41평)짜리 아파트 분양권. 다음 달 입주 예정으로, 인기가 높아 분양권 소유자는 6억5000만 원을 받고 싶어 했다. 웃돈이 1억 원이고 보유기간이 1년 미만이어서 이 가격에 팔 경우 소유자는 웃돈 1억 원에 대한 양도세로 약 5000만 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6억 원에 거래한 것으로 거짓 계약서를 쓰면 양도차익이 5000만 원으로 줄어 양도세도 2500만 원으로 감소한다.

송 씨에게 다운계약서를 권한 은평뉴타운의 D중개업소 사장은 “어차피 1주택자 비과세 요건이 9억 원으로 상향 조정돼 송 씨가 실거주할 1주택자라면 나중에 양도세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운계약서를 쓰면 매수자는 나중에 되팔 때 양도차익이 커져 양도세가 늘어나지만 3년 보유, 2년 거주 요건을 채우면 양도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라는 것.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조합원 매물은 매도자의 양도세를 매수자가 대신 내주는 경우가 많아 매수자 입장에서도 다운계약서를 쓰는 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다운계약서는 더욱 성행하고 있다. 9월 분양을 마친 서울의 한 오피스텔은 현재 프리미엄이 200만∼500만 원 선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매도자들은 거래가 그대로 신고할 경우 양도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안 파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 미등기 전매 성행… 적발 어려워

11월 현재 은평뉴타운 조합원 물량은 등기 후 한 번만 팔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번 대책이 발표되기 전부터 대부분 가계약서를 미리 작성해 놓고 입주 후 명의를 바꾸는 미등기 전매 사례가 많았다.

한 중개업소 사장은 “미등기 전매 방식으로 지난달까지 조합원 물량 대부분이 사실상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라고 귀띔했다.

분양권은 공시된 가격이 없어 프리미엄을 낮춰 신고해도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은평구청 지적과는 9월 은평뉴타운 1지구 조합원 물량 거래분 62건 중 과도하게 싼 가격에 신고된 11건에 대해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허위 신고 혐의가 판명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지적과 담당 공무원은 “대부분 ‘분양대금을 못 낼 형편이라 친척이나 과거 채권자에게 시세보다 싸게 넘겼다’는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며 “당사자의 소명이 있고 은행 거래명세가 있다면 거래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더 조사를 벌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중계약서가 국세청에 적발되면 양도인은 과태료 외에도 덜 낸 세금의 40%에 해당하는 신고불성실가산세와 그동안 안 낸 세금에 대한 이자를 날짜로 계산한 납부불성실가산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동의대 재무부동산학과 강정규 교수는 “일반 아파트처럼 분양권 프리미엄도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가격 공시를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운계약서 관행을 근절하려면 분양가가 아니라 분양권 취득가격을 기준으로 취득·등록세를 내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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