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제국’ 페르시아]<5>이란에 부는 한국 열풍

  • 입력 2008년 4월 14일 02시 59분


지난해 11월 이란 테헤란의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드라마 대장금 종방 기념 리셉션에 참가한 이란인들. 대장금 열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복을 입은 인형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테헤란=윤완준  기자
지난해 11월 이란 테헤란의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드라마 대장금 종방 기념 리셉션에 참가한 이란인들. 대장금 열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복을 입은 인형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테헤란=윤완준 기자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의 건축물에 돋을 새김으로 조각된 페르시아 친위대원. 머리와 수염을 소라처럼 고불고불하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의 건축물에 돋을 새김으로 조각된 페르시아 친위대원. 머리와 수염을 소라처럼 고불고불하고 세밀하게 표현했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천년만의 문화 해후 실크로드엔 이제 한류가 흐른다

《이란 국영방송(IRIB) 채널 2에서 드라마 ‘대장금’이 막을 내린 지난해 11월 이란에서 ‘대장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란 국영방송이 집계한‘대장금’의 최고 시청률은 86%. 국영방송 평균 시청률(30∼40%)의 두 배를 웃돌았다.

당시 이란을 찾았을 때 수도 테헤란에서도,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 유적이 있는 시라즈에서도, 화려한 이슬람 유적이 가득해 ‘세계의 절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스파한에서도 ‘대장금’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이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양금!”을 외쳤고 한국에 대해 물어 왔다. ‘양금’은 이란인들이 ‘대장금’의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다. 》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금’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란을 찾은 관광객들은 요즘도 거리에서 “양금!”을 외치며 말을 걸어오는 이란인이 많다고 전한다.

○1200년 전 실크로드에서 시작된 한국 이란의 문화교류

한국인들이 열사(熱沙)의 땅, 테러 위험 국가로 잘못 알고 있는 나라 이란. 2005년 이란 핵 개발 정책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제재안에 한국이 찬성해 한국 상품 수입을 거부했던 기억 때문인지 먼 나라로만 느껴지는 나라가 곧 이란이다.

하지만 한국과 이란은 이미 1200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를 교류한 경험이 있는 사이다. 신라 고도(古都) 경주의 괘릉에는 페르시아인을 표현한 조각상이 있고 신라의 유리잔, 은제 그릇 등 유물도 페르시아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고대 동서문화교류사에서 페르시아는 실크로드의 허브였다. 사산조페르시아(226∼651년)의 문물은 중앙아시아, 인도,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지금의 시안), 신라의 경주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파되는 등 실크로드 교류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한국어, 태권도…확산되는 이란 내 한류

‘대장금’ 열풍 등 이란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고대 실크로드의 교류를 재현하고 있다고 할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이란인들의 한국어 배우기 열기가 만만치 않다. 2006년 시작된 테헤란 한국학교의 주말 한글 강좌에는 매 학기 수강생 정원 50명이 가득 차고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 한국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한국에 유학 가기 위해서 등등 이란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태권도 인구가 12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놀랍다. 일부 중학교에서는 태권도가 정규 수업 과정으로 편성됐고 지역별로 태권도 센터가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이란 전역에 태권도장만 3500여 곳에 이른다. 여성들이 차도르를 쓴 채 태권도를 할 정도니 그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고고학에서의 양국 교류 활성화

고고학 분야에서도 양국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양대 문화재연구소는 ‘페르시아 지역에 대한 한국 이란 고고학 공동조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이란 북부 길란 주의 동굴 유적 15곳을 발굴하고 있다. 발굴 결과 카스피 해 연안에서는 최초로 무스테리안(10만∼5만 년 전에 존재한 네안데르탈인의 문화) 식의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긁개)을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란은 아프리카의 고인류와 현생인류가 세계로 퍼져 가는 과정에서 아시아로 가는 길목에 해당돼 인류의 탄생과 이동경로 연구에서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하산 파젤리나실리(46) 이란 고고학연구소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냉장고-에어컨 75%가 삼성-LG 제품

이 같은 문화 교류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과 이란의 경제 교류도 활발하다. 경제 교류의 대표 주자는 자동차. 테헤란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눈을 의심한다. 테헤란 시내를 가득 메운 자동차를 보면 한 대 건너 한 대꼴로 프라이드 베타 승용차(국내에서는 단종)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드는 이란의 자동차회사인 사이파사가 1993년부터 조립, 생산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200만 대를 넘어섰다. 이란의 자동차 보유 대수가 700만 대이니 자동차 서너 대 가운데 한 대는 한국의 프라이드인 셈. 이란의 연간 자동차 생산 능력 100만 대 가운데 프라이드가 연간 30만 대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란 사람들은 프라이드를 ‘국민차’라 부른다.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점유율도 삼성과 LG 제품이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테헤란 시내의 건물 밖으로 보이는 에어컨 실외기 상표는 거의 LG다.

이처럼 한국은 아랍에미리트 중국 독일에 이어 이란의 4대 경제 교역국이다. 양국의 교역규모는 지난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으로서는 중동 최대 수출국이다. 건설, 선박시장에도 우리 기업이 대거 진출해 있다. 한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석유량도 전체 석유 수입의 8∼9%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경제 교류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란의 호감은 각별하다. 지난해 11월 세계박람회 개최를 놓고 여수시와 모로코 탕헤르시가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을 때 이슬람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여수를 지지한 나라가 이란이었다.

최근 양국 사이에 고조되는 문화 경제 교류 분위기는 ‘21세기 한국 이란의 실크로드’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진정한 상호 문화교류를 위해선 이란의 문화가 한국에 더 많이 소개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22일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는 양국 교류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이스파한에서 만난 한 이란인 교사는 “이란도 한국처럼 깊고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나 한국인들은 이란을 전쟁과 사막의 나라로 잘못 알고 있다”며 “한국인에게 이란의 진면목을 소개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테헤란=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리 보는 ‘페르시아 유물전’▼

BC 9- BC 8세기 제작‘그리핀모양장식’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에 선보이는 독특한 황금 유물 중 하나인 ‘그리핀(사진) 모양의 장식’.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세계 제국을 건설하기 300여 년 전인 기원전 9세기∼기원전 8세기에 제작됐다. 이란 고원과 터키,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번성했던 우라르투 왕국의 유물이며 이란 서북부 코르데스탄 지방에서 출토됐다.

그리핀은 머리와 앞발,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통과 뒷발은 사자인 상상의 동물이다. 그리폰, 그리프스라고도 불린다. 고대 서아시아와 그리스 장식 미술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주로 신전이나 무덤의 장식에 쓰여 수호자 역할을 한 신성한 동물로 추정되지만 그리핀의 의미는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핀 장식은 기원전 그리스와 이집트 사이의 동지중해 연안 지역인 레반트 지방에서 처음 생겨나 서아시아 전역에 퍼졌고 기원전 14세기경 그리스에까지 전해졌다. 서아시아에서 유행한 그리핀 장식은 머리에 볏이 달려 있다. 이에 반해 그리스의 그리핀에는 나선 모양의 곱슬곱슬한 갈기가 있다.

이 황금 유물은 독수리 모양의 머리와 부리, 발톱까지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됐다. 무언가를 노려보는 매서운 표정이 사실적이며 부리 아래의 돌기, 눈 위의 눈썹이 세밀하게 표현됐다. 높은 수준의 금속 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눈썹과 귀에 붙어 볼과 턱 아래로 곡선을 그리며 늘어진 머리카락 두 가닥이 인상적이다. 이런 양식은 우라르투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전시는 22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1만 원. 02-6273-4242∼3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1〉모든길은 페르시아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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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3〉페르시아인들 경주를 활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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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5〉이란에 부는 한국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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