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중]<3>핀란드의 ‘알필라 중고교’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11분


‘無학년’ 수업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필라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화학 수업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학생들의 수준과 특성에 따라 수업을 받는 무학년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자랑하고 있다. 헬싱키=김기용 기자
‘無학년’ 수업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알필라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화학 수업을 받고 있다. 핀란드는 학생들의 수준과 특성에 따라 수업을 받는 무학년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 성취도를 자랑하고 있다. 헬싱키=김기용 기자
잘하는 과목 더 잘하게… ‘학년’ 없애고 능력별 수업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이틀째인 15일 핀란드 헬싱키 중심에 있는 알필라 중학교의 한 교실에서는 화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교실에는 8학년 11명, 9학년 4명 등 15명이 3∼5명씩 모둠(조)을 만들어 각각 다른 분자 모형을 놓고 구조 분석에 열중하고 있었다.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인 쿤투 카롤리나(14) 군이 “우리 그룹의 분자 모형은 물(H₂O)이죠”라고 말하자 교사가 “검은 것은 수소이고, 빨간 것은 산소를 의미한다”며 물 분자임을 확인해 준다. 학생 수가 적고 수업 진도가 매우 더디다는 것을 빼면 우리 중학교의 과학실험실과 비슷하다.》

1959년 세워진 알필라 중학교에는 현재 7∼9학년 372명이 40여 명의 교사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학년을 구분해 배우는 과목을 정해 놓지 않고 8, 9학년 혹은 7, 9학년이 섞여 함께 공부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학교는 무학년제(non-graded system) 등의 독특한 학교 운영으로 성과를 내면서 학부모가 선망하는 학교가 됐다.

▽최상위 학업성취도 비결은=무학년제나 고교선택제, 자기주도형 학습 등 자율을 강조하는 핀란드의 교육혁명은 1990년대 중반에 이뤄졌다. 이 무렵 닥친 금융위기가 사회경제 전반에 대한 혹독한 구조조정을 불러왔고 교육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0년대 교육 개혁의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로 이어졌다.

PISA 2000년과 PISA 2003년 결과 핀란드는 상위권을 유지했고, 57개국 40여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PISA 2006년에서는 △읽기 능력 2위 △수학 능력 2위 △과학 능력 1위에 올랐다. 한국은 △읽기 능력 1위 △수학 능력 4위 △과학 능력 11위를 기록했다.

핀란드 중고교생들이 한국 학생과 비교하면 공부하는 양은 크게 적지만 PISA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탄탄한 공교육 덕분이다.

핀란드는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지만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로 전 세계의 교육 모델이 되면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인차 반영한 무학년제 성과=핀란드는 중학교는 근거리 배정, 고교는 선택제다. 상향 평준화의 비결은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앞서 나갈 수 있는 무학년제 덕분이다.

지난해 가을 학기에 입학한 후르스카이넨 레오(13) 군과 루오마 제리(13) 군은 7학년으로 모두 소이켈리 베사 교사의 반 학생들이다.

그러나 같은 반 친구인데도 레오 군과 제리 군의 일주일 시간표를 살펴보면 전혀 다르다. 같은 수업은 월요일 아침과 금요일 오후의 기술과 가정 수업뿐이다.

알필라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각자 수업을 선택해 시간표를 짜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만 다른 것이 아니라 수준도 조금씩 차가 난다.

다른 아이들보다 영어를 좋아하는 레오 군은 친구들보다 1학기 정도 빠른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아울리키 칼라티 교장은 “전체 학생 가운데 약 10%가 정해진 과정을 뛰어넘어 수업을 하고 있다”며 “학생이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뒷받침해 주고 공부가 뒤지는 학생은 특별 교육을 해 주기 때문에 모두 실력이 향상되는 상향 평준화가 되는 결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공부’도 효과=학년 구분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 계획을 스스로 짜야 한다. 자연히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게 된다.

이 학교는 입학과 동시에 자기주도 학습을 시작한다.

7학년 사갈 누르(13) 군은 입학 전에 엄마와 함께 학교를 찾아가 담임교사와 함께 9학년까지 3년간 배울 내용을 점검하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2시간 동안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3년 스터디 플랜’이다.

학생들은 입학할 때 반드시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모여 3년간의 스터디 플랜을 짜고 이에 맞춰 매 학기 시간표를 작성한다.

또 학년이 끝날 때면 학습 계획의 성과를 측정한다. 잘한 점, 부족한 점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공부 계획을 바꾸기도 한다.

영어에 관심이 많은 누르 군은 7학년 때 영어를 3단계까지 듣기로 결정했다. 영어는 8단계까지 있지만 누르 군과 같은 학년의 학생들은 보통 2단계까지만 듣는다. 누르 군은 자신의 공부 계획에 따라 매 학기 시간표에 영어를 더 많이 배정했다. 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8학년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교장 재량으로 교육과정 편성=알필라 중학교가 무학년제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들이 획일적인 교육과정에 얽매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은 지방정부에 따라 단계별로 교육 목표가 설정돼 10여 개 문장으로 기술돼 있다. 예를 들어 헬싱키 시에서 만든 중학교 영어 1∼3단계의 교육목표 중 하나는 ‘영어로 자신의 취미나 특징을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학교는 여러 방법을 활용해 이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핀란드에서는 또 학기를 교장의 재량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알필라 중학교의 경우 1년이 1학기에 7주씩 모두 5학기로 운영된다.

학기가 짧은 것은 그만큼 단계별 성과 측정과 학습 계획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중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지구력 등을 감안할 때도 7주 정도가 학습 의욕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학급당 학생이 15∼20명이어서 개별 지도는 물론 무학년제가 가능하다.

영어교사 키르시 이할라이넨 씨는 “모든 학생이 영어를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은 더 공부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다른 수업을 더 듣게 해 준다”며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주는 것이 평등교육의 원칙에 맞고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헬싱키=김기용 기자 kky@donga.com

▼“공부 많이 하는 한국보다 성적 좋은 건▼

하고 싶은 공부 맘대로 할 수 있기 때문” 알필라 교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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