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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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도탄에 빠질 때 권력은 ‘가짜 영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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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

198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른바 ‘저주 받은 걸작’에 속합니다.

이 영화는 철학적 성찰과 인류역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명상을 지나 종교적 체험까지 맛보게 하는 기묘한 분위기를 내는 명작이지만 정작 일본 개봉 당시엔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1] 스토리라인

오네아미스 왕국에 사는 평범한 청년 ‘시로츠구’. 그는 하늘을 나는 게 평생의 소원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제트기 조종사가 될 수 없었던 그는 대신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왕립우주군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왕립우주군은 인공위성 한번 제대로 쏘아 올리지 못하는 무능한 집단이고 정부의 예산지원마저 끊겨가는 상황이지만, 시로쓰구는 ‘우주로 날아오르는 최초의 인간이 되겠다’는 꿈을 접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왕실은 왕립우주군에 대해 돌연 전폭적인 지원을 시작합니다. 우주로 쏘아 올릴 로켓이 만들어지고, 시로쓰구는 로켓에 탈 조종사로 선발됩니다. 시로쓰구는 이때부터 국민적 영웅이 됩니다. 국가와 매스컴은 연일 시로쓰구를 치켜세웁니다.

승승장구하던 시로쓰구. 그는 어느 날 신(神)의 말씀을 전하는 여인 ‘리쿠니’를 우연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자신은 권력이 만들어낸 가짜 영웅에 지나지 않는단 사실을.

드디어 로켓 발사일. 하지만 이게 웬일입니까. 인근 적대국은 로켓 발사를 막기 위해 왕국을 침략해 오고, 왕국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시작하면서 큰 전쟁이 시작됩니다.

로켓 발사를 취소하라는 왕국의 명령.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시로쓰구는 동료들을 설득해 로켓을 발사시킵니다. 시로쓰구가 탄 로켓은 전쟁의 포화를 뚫고 우주로 날아오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상합니다. 급기야 세계 최초의 우주인이 된 시로츠구. 하지만 그는 전혀 기쁜 기색이 아니니 말입니다. 평생의 꿈이 성취되었건만, 그의 마음은 외려 어둡습니다. 그는 묵시록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난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다. 처음으로 인간이 별들의 세계를 누비고 있다. 산이나 바다가 그러했듯, 우주 역시도 옛날엔 신이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우주는 인간의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다시 십중팔구 쓸모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땅을 더럽혔고, 하늘을 더럽혔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우주로 왔다.”

우린 지금껏 이런 믿음을 신앙처럼 가져왔습니다. ‘인류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게 되면 인류에겐 새로운 삶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늘 참일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류는 점점 발달하는 문명의 힘으로 점점 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왔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발견된 세계는 언제나 인간에 의해 더럽혀졌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때마다 그만큼 불행해졌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인류(정확히는 서양인들)가 찾아 헤매던 ‘신대륙’이었습니다. 인류는 선박 건조기술과 항해술이라는 문명의 힘으로 새로운 기회의 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살육의 시작이었고 또 다른 오염의 시작이었습니다.

우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인류는 우주라는 ‘기회의 땅’을 열려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오염의 시작인지 모릅니다. 인류의 역사가 증언합니다. 인간은 매번 ‘정복’이라는 희망의 이름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었지만, 언제나 죽고 죽이는 전쟁으로 끝을 맺었다고 말입니다.

우주군의 총지휘를 맡은 장군의 말은 이러한 역사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는 반복된다”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문화는 전쟁을 만들지 않지만 전쟁은 문화를 만든다. 정의 같은 건 없다. 역사는 우리가 자멸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게임이야.”

그렇습니다. 인류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어느새 ‘문화’인 양 반복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된 시기부터 싸워 온 인류는, 결국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저주 같은 전쟁을 계속할 것이란 얘기죠.

하지만 영화는 종말론적인 진단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시로쓰구의 기도를 통해 실낱같은 구원의 가능성을 희망하고 또 점쳐봅니다.

“우리를 어둠 속에 내버려두지 마소서. 우리의 절망 속에서도 하나의 빛나는 별을 주소서.”

[3] 더 깊이 생각하기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주인공 시로쓰구를 보세요. 그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영웅의 자리에 오른 걸까요? 아닙니다. 사실 그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국가가 만들어낸 ‘위조 영웅’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럼 국가는 왜 평범한 중산층 출신 시로쓰구를 일약 ‘인류의 구세주’인 양 떠받드는 걸까요? 그건, 국민에게 ‘가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길거리엔 굶주리는 사람들로 득실거리고, 폭력과 매춘은 포화 상태입니다.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이런 민생의 현주소를 외면한 채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급기야 영웅을 만들어 냅니다. 수많은 사람이 단 한 명의 영웅을 올려다보고 흠모하는 동안 그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망각하게 되니까요.

뭐랄까요. 영웅이란 건, 권력자들이 국민의 몸에 주사하는 모르핀(마취제나 진통제로 쓰이는 마약 성분) 같은 겁니다. 죽어가는 국민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려고 말이지요.

영화에서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시로쓰구를 카메라에 담던 TV 연출자는 시로쓰구에게 딱 부러지게 말합니다. “우주영웅, 그것이 당신의 사명입니다. 많은 희생이 따라왔지만,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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