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692년 세일럼 마녀재판 시작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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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의 베티와 열한 살의 애비게일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방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가구 밑으로 기어 다니며 몸을 비틀기도 했다. 누군가 몸을 바늘로 찌르고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면서.

응석받이 꼬마들의 장난이겠지, 아니면 간질 발작일지도…. 대개의 사람들은 이렇게 여길 테지만 17세기 말 영국 청교도들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의 세일럼 마을에선 그렇지 않았다.

두 소녀는 새뮤얼 패리스 교구목사의 딸과 조카였다. 패리스 목사는 설교를 통해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들은 두려움에 떠는 듯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했다.

결국 의사를 불러왔다. 하지만 의사는 “어떤 병에 걸렸다는 아무런 물리적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초자연적 원인에 의한 발병이라고 진단했다. 초자연적 원인이란 곧 마법을 의미했다. 마귀에 씌었다는 것이었다.

1692년 2월 8일 내려진 의사의 진단은 이후 1년이 넘게 세일럼과 인근 주민들을 집단 히스테리로 몰아넣은 ‘세일럼 마녀재판’의 시작이었다.

소녀들은 환각상태에서 봤다는 유령들을 지목했다. 패리스 목사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인디언 티투바, 마을의 비렁뱅이로 입이 험한 여인, 하인과 결혼해 구설에 자주 올랐던 노파가 첫 희생자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을의 다른 소녀들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면서 마녀들에 대한 고소가 이어졌다. 주민 서로가 서로를 마녀로 지목했고 세일럼 감옥은 마녀 혐의자들로 가득 찼다.

이 마녀사냥으로 최소 175명이 감옥에 갇혔고 이 중 20명이 처형되고 5명이 옥중에서 사망했다. 한 80세 노인은 몸에 널빤지를 얹고 그 위에 돌덩이를 쌓는 고문을 받다 짓눌려 사망하기도 했다.

오늘날 세일럼은 마녀박물관과 마녀상점이 넘쳐나는 관광도시가 됐다. 하지만 세일럼 마녀재판은 미국 문명사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수많은 학자와 작가들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의학자들은 소녀들의 증세가 곰팡이 핀 호밀빵이 원인이 됐거나 일종의 뇌염 증세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역사학자들은 개척시대 초기 토지를 둘러싼 주민들 간의 반목이 낳은 사건으로 해석했다.

또 극작가 아서 밀러는 희곡 ‘시련(The Crucible)’을 통해 세일럼 마녀재판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생생하게 그렸다. 밀러가 이 작품을 발표한 시기는 1953년. 미국에 공산주의자 색출이라는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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