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4>고용안정위해 선택한 주7일근무

  • 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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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틀러 씨가 아우토5000 생산라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 회사에 취직하기 전까지 비서로 짧게 일한 뒤 2년이 넘게 실업자로 지냈던 부틀러 씨는 지금은 정규직 기술자가 됐다. 사진 제공 폴크스바겐
부틀러 씨가 아우토5000 생산라인에서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이 회사에 취직하기 전까지 비서로 짧게 일한 뒤 2년이 넘게 실업자로 지냈던 부틀러 씨는 지금은 정규직 기술자가 됐다. 사진 제공 폴크스바겐
《라인 강과 모젤 강이 만나는 독일 중남부의 전원 도시 코블렌츠.

외곽 공장지대로 들어서면 카를 마르크스가 편집장을 지냈던 신문사 ‘라인차이퉁’ 사옥이 눈길을 끈다.

라인차이퉁 맞은편 넓은 녹지 위에는 코러스알루미늄 사옥이 들어서 있다. 세계적 금속기업인 알레리스그룹의 자회사로 ‘보잉777’ 등 항공기의 소재가 되는 알루미늄 철판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지난해 12월 이 회사를 찾았을 때 회사 측 인사노무부장인 한스베르너 바이머 씨는 회사 경영여건에 대해 “‘보잉’ ‘에어버스’ 등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어 2010년까지는 괜찮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종업원평의회(노조) 의장인 베른트 포에르파일 씨의 전망은 조금 달랐다.

“알코어, 알칸 등 북미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시설투자를 늘리고 품질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5년 내에 1993년 같은 해고 위기를 다시 겪을 수도 있어요.”

잠시 노사가 뒤바뀐 듯한 착각이 들었다.

○노조 지도부가 주7일 근무 설득

이 회사 직원들은 1993년을 끔찍한 해로 기억했다.

경쟁사들에 밀리면서 적자가 늘자 경영진은 공장 폐쇄까지 검토했다.

머리를 맞댄 노사는 근로자 1100명 가운데 120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또 주5일 근무 대신 주7일 근무를 도입하기로 했다.

“회사 경쟁력을 높이려면 제철소의 고로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알루미늄 제작 공정을 24시간 내내 돌려야 하는데 주5일 근무로는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노조 지도부가 나서서 주7일 근무를 설득했죠.”(포에르파일 의장)

노사가 주7일 근무에 합의했지만 이번에는 법 규정에 걸렸다.

독일의 사업장법 등은 주7일 근무를 하려면 노동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코러스알루미늄 노사는 ‘외국 업체와의 경쟁에 필요하다면 예외적으로 주7일 근무를 할 수 있다’는 사업장법 조항을 들어 노동 당국으로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근무를 허가받았다.

해고 대상자 120명 선정도 종업원평의회가 맡았다. 노조는 58세 이상이면 3년간 실업급여를 받은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고령자 100명을 해고 대상으로 정했다.

30, 40대 해고 대상 20명에게는 ‘회사 정상화 이후 재고용’을 약속했다.

주말근무를 시작한 지 2년째인 1995년 회사는 흑자를 냈고 젊은 층 해고자 20명은 당초 약속대로 모두 복직했다.

2006년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률은 2.5%. 2000년 이후 6년째 임금인상률은 1∼2%에 머무르고 있다.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최근 6년간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은 셈이지만 그래도 코러스알루미늄의 노동자들은 “우리 힘으로 일자리를 지켰다”는 데 더 의미를 둔다.

포에르파일 의장은 지난해 5월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독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일자리를 위한 정치적인 우선 원칙‘을 천명하며 노동자들에게 요구한 ‘절제’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핵심은 ‘임금 인상을 고집하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웃한 동유럽이나 해외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우리 임금은 여전히 높습니다. 독일 노동자들도 그걸 잘 알고 있죠.”

○주면 받는 것도 있다

코러스알루미늄 공장 한가운데에는 ‘직업양성교육장’이라고 이름 붙은 4층짜리 건물이 있다. 지난해 12월 12일 이 건물을 방문했을 때 1층 작업실에서는 슈테판 호이베스(22) 씨가 컴퓨터를 이용해 알루미늄을 가공하는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3년 동안의 직업양성교육을 마치고 2007년부터 정규 직원이 됐다. 호이베스 씨의 아버지는 이 회사에서만 30년을 근무했다.

코러스알루미늄은 매년 20명씩 취업기에 접어든 종업원의 자녀를 직업양성교육생으로 받아들인다.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하면 이들은 100% 채용된다.

일자리가 대물림되는 이 제도는 노조가 1993년 주7일 근무와 정리해고를 받아들였을 때 사측이 마련한 제도다.

바이머 부장은 “대가 없는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회사를 지키기 위해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파격적인 양보를 했다면 회사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하는 법이죠.”

최근 10년 동안 직업양성교육을 거쳐 이 회사에 취직한 직원 자녀는 150명에 이른다. 덕분에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애정은 더욱 높아져 정년퇴직이 아닌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회사 측은 직원 자녀 채용과 함께 주말 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의 피로를 덜기 위해 토, 일요일에는 3교대 근무를 4교대 근무로 전환했다.

또 매년 50세 이상 근로자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알맞은 업무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2004년에는 경영진이 예정에 없던 연말 상여금(월급여의 55%)을 지급하기도 했다.

○‘우리’끼리 해결하는 게 전통

지난해 코러스알루미늄의 노사분규는 3월 초 1주일간 진행됐다. 이 기간에 회사의 생산직 근로자 50여 명이 인근 금속 관련 기업의 근로자들과 함께 ‘그만 좀 아껴라’ ‘임금 동결 중단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공장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임금 협상을 앞두고 상급단체인 독일 금속노조(IG Metal)의 지시에 따라 경고성 ‘파업’을 한 것.

포에르파일 의장은 “상급노조 방침에는 따르지만 1965년 회사가 설립된 후 파업 때문에 생산라인이 중단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 노사의 규약에는 ‘합의위원회(노사 갈등을 중재하는 한국의 노동위원회와 비슷한 기구)에 가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다.

바이머 부장은 “1993년 정리해고를 단행했을 때도 인근에 입주한 기업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다”며 “우리끼리 조용히 해결하는 전통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러스알루미늄은 지난해 노사합의로 5억 유로(약 7250억 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결정했다. 2006년 매출액이 5억6000만 유로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투자 규모다.

포에르파일 의장은 “투자든 해고든 회사 내부에서 노사협의로 결정한다”며 “국제 경쟁이 치열할수록 노사가 협조해야 할 분야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자회사 ‘아우토 5000’의 실험

“2년이상 실업자만 채용”

지난해 12월 14일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 폴크스바겐 공장의 발전소 굴뚝 뒤편. 이곳에는 ‘아우토 5000’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있다. 2002년 생산을 시작한 폴크스바겐의 자회사로 폴크스바겐 사의 미니 밴인 ‘투란’을 만드는 곳이다.

조립라인에서는 금발의 아가씨 카타리나 부틀러(25) 씨가 회색 작업복을 입고 나사를 죄고 있었다. 2002년 초까지 그녀는 실업자였고 경력이라고는 비서로 잠시 일한 게 전부였다. 아우토 5000에 입사한 지 4년 만에 그녀는 제법 숙련된 자동차 기술자가 됐다.

공장 안내원인 폴크스바겐의 헤어 마인홀트 씨는 “부틀러 씨의 성공이 바로 ‘아우토 5000’이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우토 5000’은 폴크스바겐의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로 설립됐다. 이 회사는 2002년 3월 ‘최근 2년간 실업 상태를 유지한 자’를 응시 자격으로 내세워 모든 직원을 실업자 중에서 선발했다.

5000의 의미는 고용 목표 5000명, 월급 5000마르크(약 272만 원).

이들의 급여와 근로조건은 폴크스바겐의 근로자와 달랐다. 급여는 15∼20% 낮고, 근무시간은 폴크스바겐 기준인 주5일 33시간 대신 주 28.8∼42시간으로 탄력적이다.

실업자들은 일자리를 얻는 대신 다소 낮은 급여와 유동적인 근로시간을 받아들였다.

이 회사의 생산량은 2002년 첫해 519대에서 2005년 19만1207대로 증가했고 ‘투란’은 폴크스바겐의 인기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회사는 2006년 7월 부틀러 씨를 포함해 이 회사 5000여 명의 직원들과 장기 고용계약을 했다.

3년 단위 고용계약이 무기한 계약으로 바뀌어 사실상 정규직이 된 것. 또 이 회사 노사는 2008년부터 폴크스바겐의 레저용 신모델을 생산하기로 했다.

실업자들만 모인 회사가 유럽 최대 자동차 회사의 전략 차종을 생산하게 된 셈이다.

부틀러 씨는 “장기간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이라며 “내년에는 ‘자동차 제조 기술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독일),파리(프랑스)

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사이타마·도쿄(일본)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미국)

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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