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前대통령 부부 조용한 나눔으로 미국의 상처를 보듬다

  • 입력 200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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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포드 전 대통령과 부인 베티 여사.
생전의 포드 전 대통령과 부인 베티 여사.
《“식사 전후로 술을 마셨다. 수면제, 진통제, 우울증 치료제…. 이 모든 약의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한 알약…. 약과 술에 의존하는 나날들이었다.” 26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베티 포드(88) 여사가 자서전에서 고백한 대통령 퇴임 직후의 생활이다.》

포드 전 대통령 부부가 1978년 백악관을 떠난 뒤 겪은 삶의 여정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직 국가원수 부부로서의 화려함보다는 평범한 이웃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갈등과 고통을 겪다가 이를 극복해 온 과정이었다.

포드 전 대통령 부부에게 1974년 8월 백악관 입성은 연속적인 ‘생활의 급변’이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자리를 승계한 포드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뒷수습으로 머리를 싸매는 중에 베티 여사는 유방암 선고를 받았다. 백악관 입성 한 달 만이었다.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의 무용수와 모델로 활동했던 베티 여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히 내조하는 3남 1녀의 어머니였다. 앞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베티 여사는 솔직하게 유방암과의 싸움을 공개했다.

당시만 해도 유방암은 드러내기 힘든 ‘사적’인 문제였다. 오른쪽 가슴을 잘라내고 화학요법을 받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많은 여성에게 유방암 정기검진과 자가진단을 권유했다. 수많은 미국 여성이 검진을 받기 시작했고 암협회에는 기부금이 쇄도했다.

1976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뒤 이들에겐 또 위기가 닥친다. 공화당에선 베티 여사가 유방암 문제를 공개하고 낙태권과 남녀평등권까지 주창한 게 선거 패배의 한 원인이라는 불만까지 나왔고 부부간에도 갈등이 생겼다.

베티 여사는 약과 술로 심적, 육체적 고통을 달래다 알코올과 약물 의존증에 걸렸다. 그러나 1978년 베티 여사는 “알코올과 약물 의존증도 질병”이라며 입원 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그 시절 알코올과 약물 의존증은 철저히 숨겨야 하는 치명적인 오점이었다. 베티 여사의 고백 이후 유명 운동선수, 연예인들도 알코올과 약물 의존증 치료를 숨기지 않았다.

베티 여사가 이를 극복하자 포드전 대통령 부부는 1982년 캘리포니아 주 사막지대인 랜초미라지에 알코올·약물 의존증자 재활센터인 ‘베티포드 센터’를 세웠다. 그동안 5만 명이 거쳐 간 이 센터는 현재 미국 내 최고 재활센터 중 하나로 꼽힌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그는 국가원수에게 요구되는 품위와 명예를 지키면서 조용히 와서 상처를 치유해 주고 나간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2004년 7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전쟁과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의 이라크 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두 사람은 포드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각각 비서실장과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기용한 인물. WP는 28일 “그러나 포드 대통령은 자신이 숨진 뒤에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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