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거주불명 15만명 복지사각… “경찰 투입해 소재 추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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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모녀 사건’ 오늘 10주년
연락두절 조사 종결 7년간 3만건… ‘수원 세 모녀’ 등 사망사례 계속돼
작년 위기가구 4.3%만 공적지원… “민간 인프라 키워 발굴-지원해야”

16일 서울 금천구의 한 주민센터 소속인 위기가구 전담 공무원(오른쪽)과 간호사가 관내 홀몸노인(가운데) 자택을 방문해 혈압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금천구는 고독사 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 사용량이 없을 경우 출동하는 ‘스마트 플러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6일 서울 금천구의 한 주민센터 소속인 위기가구 전담 공무원(오른쪽)과 간호사가 관내 홀몸노인(가운데) 자택을 방문해 혈압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금천구는 고독사 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 사용량이 없을 경우 출동하는 ‘스마트 플러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랫집 아저씨가 집에서 며칠째 나오지 않고 있어요.”

지난달 초 서울 금천구의 한 주민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배달 기사로 일하는 50대 이웃이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출동해 보니 세입자는 영하의 날씨에 가스가 끊겨 냉골인 집안에서 떨고 있었다. 담당 직원은 “주민등록 주소지와 실제 사는 곳이 다른 문제 등으로 몇 년째 복지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였다”며 “이웃이 신고하지 않았더라면 큰일 날뻔했다”고 전했다.

26일은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병든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아르바이트비 120만 원 등 때문에 복지 혜택에서 탈락한 뒤 동반 자살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후 정부가 복지 사각 계층을 선제적으로 찾는 시스템을 도입해 지난해에만 위기가구 주민을 138만 명 넘게 찾아냈지만, 실거주지가 달라 행방을 알 수 없는 ‘거주불명자’ 15만 명은 여전히 복지 제도 바깥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거주불명’ 15만 명, 여전히 복지사각에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으로 찾아낸 주민은 138만8689명이었다. 시스템이 도입된 첫해인 2015년에 발굴된 11만4609명보다 12배로 많아졌다. 이 시스템은 단전·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위기 정보 44종을 토대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가구를 파악해 방문조사 등으로 복지 제도를 안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실제 복지 지원으로 이어진 사례는 68만6439명(49.4%)으로 전체 발굴 대상자의 절반에 못 미쳤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차상위 지원 등 안정적인 공적 지원을 받은 경우는 4.3%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사회서비스이용권과 같은 기타 공공서비스나 결연 후원금 등 민간서비스와 연계됐다.

문제는 이마저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거주지를 파악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위기 의심가구로 분류되고도 연락 두절로 조사가 종결된 사례는 2016∼2022년 7년간 3만2906건에 달했다. 소재지가 1년 넘게 파악되지 않아 행정안전부의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 사례는 지난해 말 기준 15만220명에 달한다.

실제로 공공부조 바깥의 죽음은 거주불명자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2022년도엔 경기 수원시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숨졌는데, 이들은 주민등록상 거주지가 달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서울 서대문구에서도 한 모녀가 사망했지만, 실거주지가 달라 사망 직전까지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 위기가구, 경찰 투입해 실종자처럼 추적


이에 따라 정부는 위기 징후가 뚜렷한 가구 중 연락이 끊기거나 사는 곳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소재를 실종자에 준해 추적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반기(1∼6월) 중 경찰력을 투입하는 방안을 경찰청과 협의 중”이라며 “경기 수원시와 충남 아산시, 경남 창녕군 등 3곳에서 시범사업을 벌인 뒤 출동 기준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재 불명 위기가구를 찾는 노력과 함께 민간 인프라를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시는 시민 1200여 명을 ‘우리동네돌봄단’으로, 3만3000여 명을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으로 각각 임명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찰과 지자체에 거주불명자를 끝까지 추적할 권한을 주는 한편, 발굴된 위기가구가 충분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민간 지원도 유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거주불명#복지사각#스마트 플러그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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