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중앙정부 주도식 국토균형발전 정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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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개발권한 지방 이양의 걸림돌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갈수록 커져
복잡한 지역 행정수요 대응도 문제
LH 리스크에 3기 신도시 대책 흔들

신도시 사업을 주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내부 문제로 휘청일 때마다 주거정책이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3기 신도시인 경기 부천시 대장신도시도 지난해 10월 착공식이 LH와 국토교통부, 부천시 등의 일정 조율 문제로  연기됐다. 대장신도시 전경. 부천시 제공
신도시 사업을 주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내부 문제로 휘청일 때마다 주거정책이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3기 신도시인 경기 부천시 대장신도시도 지난해 10월 착공식이 LH와 국토교통부, 부천시 등의 일정 조율 문제로 연기됐다. 대장신도시 전경. 부천시 제공
《국토균형발전은 역대 모든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으나 결과는 실망스럽다. 인구와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중앙정부 주도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지방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과 문제점,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 등을 3회에 걸쳐 정리한다. 》

‘캐비닛에 차고 넘치는 보고서.’

탁상행정이라는 말과 함께 현실성이 떨어지는 쓸모없는 계획이나 정책을 꼬집을 때 쓰는 표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토 균형발전 관련 정책이다. 전체 국토를 고르게 발전시켜 국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책은 1960년대부터 좌우 정부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추진돼 왔다. 그런데도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원인은 수도권 집중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중앙정부 주도식 정책 추진에서 비롯됐다고 입을 모았다.

●‘캐비닛용 보고서’ 남발한 국토균형발전 정책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6·25전쟁 폐허 복구를 위한 성장 거점 위주 국토 개발 정책을 추진하면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으로의 인구와 경제 집중 현상이 계속됐다. 이에 정부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토 균형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특히 2003년 노무현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최상위 국정과제로 삼은 이후 역대 정부는 수도권 인구 및 경제력 지방 분산에 적잖은 공을 쏟았다.

그럼에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GRDP) 격차가 2010년 1.2%포인트에서 2021년 5.6%포인트로 더 커졌다. 전체 인구(50.5%·기준 시점 2022년)와 취업자(50.1%·2021년)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있고 100대 기업 본사는 무려 86%(2022년)가 집중돼 있다.

반면 비수도권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력도 취약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아예 2021년 10월부터 전국 전체 시군구 40%에 해당하는 89개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고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인구 감소 추세가 지속될 경우 ‘일자리·정주 여건 취약→인구 유출→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국가 전체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한 결과다.

● 톱다운 방식으로는 맞춤형 정책 설계 어려워


전문가들은 이런 결과가 빚어진 원인으로 중앙정부가 주도해 지방자치단체 등에 수혜를 주듯 정책을 펼치는 톱다운(상의하달) 방식 정책 추진 과정을 꼽았다.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정책으로는 지방 생활 여건이나 발전 역량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설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정부에서 개발, 수혜, 지원 대상을 직접 선정하고 공모하는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성장촉진지역 사업 등이다. 중앙정부가 주도해 일률적으로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정책 기획 역량을 끌어올리거나 지역 간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화하고 세분화함에 따라 다양한 행정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도 지방정부 주도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컨대 인구 감소 대책도 지역별로 인구 증감이나 출산율 등에 차이가 있어 지역 실정을 고려한 차별적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기반시설-자족성 떨어지는 신도시 양산


개발 권한의 중앙정부 집중도 문제로 꼽힌다. 기반시설과 자족성이 부족한 신도시를 양산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주요 신도시는 대부분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대응책으로 계획이 결정됐다. 1∼3기 수도권 신도시를 포함한 주요 택지개발지구 거의 대부분이 해당한다. 이런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중장기 도시계획은 간과되기 일쑤다.

부작용은 또 있다. 정부를 대신해 택지개발사업을 주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내부 문제로 휘청일 때마다 주택 공급을 앞세운 정부의 주거정책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송두한 경기주택도시공사 도시주택연구소장은 “최근 4년(2019∼2023년)간 신규 지정 택지개발사업 가운데 80%가 LH의 몫이었다”며 “LH의 리스크가 주거정책 실현의 리스크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30만 채가 입주할 예정인 수도권 3기 신도시 입주 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1, 2년씩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토지 수용이 늦어지는 데다 LH가 ‘임직원 부동산 투기’나 ‘무량판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같은 잇단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게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국토균형발전#캐비닛용 보고서#신도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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