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또 보고 싶다!… 대중문화 ‘분노 콘텐츠’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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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인물들 나오거나, 시청자 분노 끌어내거나…
한국계 美이민자의 삶 그린 ‘성난 사람들’… 불안-자기혐오 등 보편 감정 다뤄 공감대
불륜 다룬 ‘내 남편과…’ 시청자들 공분
“단시간에 감정 폭발적 자극… 구매 유도”

최근 대중문화계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등장하거나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분노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콘텐츠마다 분노의 원인이나 양상은 다르지만, 분노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소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건 공통점이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서 대니(오른쪽)와 에이미는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참다가 서로에 대한 난폭 운전으로 분노를 폭발시킨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성난 사람들’에서 대니(오른쪽)와 에이미는 자신들이 겪는 고통을 참다가 서로에 대한 난폭 운전으로 분노를 폭발시킨다. 넷플릭스 제공
15일(현지 시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상인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모범적 소수자’로 살아야 하는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그리면서도 인정 욕구, 질투, 불안, 자기혐오 등 현대인의 분노를 자극하는 보편적 감정을 다뤄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극중 못난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대니(스티븐 연)나 자신보다 육아에 더 큰 역할을 하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는 에이미(앨리 웡)의 모습은 국경을 초월해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 시청자들 사이에서 “나도 대니, 에이미처럼 화낸 적이 있다”, “분노가 가득한 현대인의 마음을 후벼팠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성난 사람들’을 연출한 이성진 감독은 지난해 4월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로드 레이지’(난폭 운전)가 늘어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악화시킨 것은 고립감과 외로움”이라고 말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이 현대인의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코로나19는 마스크 의무 착용 등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보여줬다”며 “‘성난 사람들’은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억압이 해결되지 못하면 개인은 분노하고 파괴적인 성향을 보일 거라는 통찰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성난 사람들’이 분노한 주인공들을 보여준다면 12·12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불의에 무기력한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영화를 보다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느낀 분노를 인증한다”며 젊은 층 사이에서 ‘심박수 측정 챌린지’가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분노가 이어지며 지난해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까지 약 1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서울의 봄’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는 “요즘 세대는 공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며 “합리적이고 공정한지를 찾아 나간다는 점에서 ‘서울의 봄’은 젊은 세대가 분노할 수 있는 비극적 서사”라고 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친한 친구와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날 살해당한 여성 강지원이 ‘인생 2회차’를 살며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다. tvN 제공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친한 친구와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날 살해당한 여성 강지원이 ‘인생 2회차’를 살며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다. tvN 제공
사회적 공분뿐 아니라 ‘불륜 서사’도 분노를 유발하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 약 8억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친구와 바람이 난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복수극으로 최고 시청률 9.4%를 달성했다.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웹툰 ‘재혼황후’도 불륜 소재로 여성들의 공분을 자아내며 네이버웹툰 여성 독자 조회수 1위에 올랐다.

분노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건 온라인 플랫폼의 소비 트렌드도 한몫하고 있다. 이융희 문화연구자(전 세종사이버대 만화웹툰창작과 겸임교수)는 “회당 읽는 시간이 5분 남짓한 웹소설, 웹툰은 독자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해 다음 회차를 구매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콘텐츠 소비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는 만큼 분노를 자극하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대중문화#분노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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