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메타버스는 고대에도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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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상 세계로 간다/허먼 나룰라 지음·정수영 옮김/308쪽·1만9000원·흐름출판

“예수의 형상이 남아 있다는 ‘토리노의 수의’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사회가 그 천에 다른 세계를 향한 믿음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토리노의 수의가 요즘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디지털 아트 같은 가상 오브제이다. 종교적 상상력으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와 와이파이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는 생각보다 비슷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살핀 책이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의 한 종류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태고부터 언어와 상상력만으로 메타버스를 창조해왔다고 말한다.

1만여 년 전 만들어진 터키의 신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메타버스의 원형이다. 1000년에 걸쳐 거대한 바위를 날라 만든 이 유적엔 전갈과 으르렁대는 맹수, 날갯짓하는 독수리와 머리 없는 인간의 조각 등 신화적 상징이 넘쳐난다. 고고학자들은 사람들이 이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협동하면서 신석기 혁명이 앞당겨졌을 거라고 본다. 피라미드나 올림푸스 신전 등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메타버스는 인류가 처음 존재했을 때부터 지녔던, 현실에 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본성의 최신판이라는 것이다. 고대에도 가상세계는 사람들이 사건과 정체성, 규칙, 사물이 실재한다고 믿기에 존재했고, 현실의 인간사회와 서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부와 만족감, 의미를 증진했다. 자연스레 오늘날 좋은 메타버스의 조건도 찾을 수 있다. ‘이용자의 내적 동기와 자기 결정성을 충족시키며, 다른 사람과 충분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현실 세계와 가치 교환이 가능한’ 메타버스다.

저자는 21세기 안에 컴퓨터와 뇌 신경이 직접 연결되는 포스트 휴먼 사회가 등장하고, 사람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지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때는 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현실보다 더 정교한 가상 세계 수천 가지 속에서 다채로운 삶을 병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글로벌 가상현실 소프트웨어 회사 임프라버블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쓴 책답게 메타버스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고찰이 펼쳐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메타버스#고대#과학적 근거#사회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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