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간 버린 플라스틱이 31개… 이걸 언제 다 샀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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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스 ‘플콕조사’ 체험기
식재료 장만 봐도 겹겹 비닐 포장
플라스틱 줄이려는 노력 물거품… 1인당 평균 배출량 일주일에 41개
개인 노력으로는 감축에 한계… 기업이 근본적 변화 이끌어야

‘31개나 된다고?’ 당황스러웠다. 2인 가구 구성원으로 30대 여성인 기자가 닷새 동안 일상생활에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개수다. 어림잡아 하루 평균 6개다. 처음 기록을 시작할 때 내심 ‘버리는 플라스틱이 없어서 기사 쓸 내용이 없으면 어쩌지’라고 생각한 스스로가 무안해졌다.

기자는 이달 1일부터 5일까지 닷새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플콕조사’에 참여했다. 플콕 조사는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배출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직접 기록해 보고, 그 심각성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그린피스 애플리케이션(앱)에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플라스틱 제조사나 상품명이 자동 입력된다. 바코드가 없는 경우 직접 입력할 수 있다. 2020년부터 매해 7월 말경 일주일간 진행되며, 올해도 3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 ‘플라스틱 주문한 건 아닌데 ’ 일상이 플라스틱
기자가 닷새간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 일부. 패스트푸드점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투껑, 택배 비닐 포장재, 식품(젓갈류) 포장재(왼쪽부터).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기자가 닷새간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 일부. 패스트푸드점 일회용 컵과 플라스틱 투껑, 택배 비닐 포장재, 식품(젓갈류) 포장재(왼쪽부터).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기자가 처음에 ‘플라스틱을 몇 개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만했던 이유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주범으로 꼽히는 배달 음식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주범인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실 때는 일회용 컵을 사용했었지만, 최근 환경 담당 기자가 된 후에는 ‘접는 텀블러’를 장만했다. 그만큼 플라스틱을 쓰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던 중이었다.

하지만 막상 기록을 시작해 보니 플라스틱 없이는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웠다. 배달 음식을 안 먹는다 해도 플라스틱을 안 쓸 수 없었다. 마트에서 구매하는 식자재 대부분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했다. 비닐에 밀봉된 명란젓은 또다시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었고, 간편식 냉면 제품에서 육수와 면이 각각 비닐에 담겨 있었다. 채소나 과일도 일회용 비닐로 포장돼 있었다.

깜박 텀블러를 두고 간 햄버거 가게에서는 ‘먹고 간다’고 했지만, 음료를 일회용컵에 담아줬다. 이번 주 보디워시와 보디로션을 다 써 플라스틱 용기 두 개가 추가됐고, 며칠간 병원 처방약을 먹을 때 약 포장재도 비닐인 걸 인식할 때는 ‘이건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에 억울하기까지 했다. 예상치 못하게 늘어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사실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주말 이틀은 기록을 포기했다.

● 73%는 식음료 포장재 기업이 바뀌어야
‘2023 그린피스 플콕조사’에 참여한 박은혜 씨가 자신이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앱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2023 그린피스 플콕조사’에 참여한 박은혜 씨가 자신이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앱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이번 플콕 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개인의 노력에 한계가 있었다. 기업의 유통 시스템이 바뀌어야 플라스틱 배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임신 9개월이 넘어선 박은혜 씨(39)는 아이가 태어날 세상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텀블러와 유리 빨대,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 포장은 다회용기에 해온다.

그런데도 자신이 일주일간 배출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자질구레하게 70여 개라는 데 씁쓸했다. 박 씨는 “지난해 (플콕조사에) 참여했을 때보다 올해는 얼마나 배출량이 줄었을지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작년과 거의 차이가 없다”며 “식자재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데 플라스틱이나 비닐로 소포장이 돼 있다. 선택지가 없다는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린피스가 지난해 진행한 플콕조사를 분석한 ‘2022년 내가 쓴 플라스틱 추적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참여자 3506명이 일주일간 배출한 일회용 플라스틱은 총 14만5205개다. 일주일간 1인당 약 41.4개의 플라스틱이 발생한 꼴이다. 특히 식품포장재로 쓰인 일회용 플라스틱이 10만6316개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의 73.2%를 차지했다.

● 식품 포장, 비닐류가 33% 차지
쌍둥이 아빠 이기정 씨(45)는 “평소 플라스틱 용기가 담긴 제품을 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노인주간돌봄센터에 다니는 어머니 간식을 준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음료나 플라스틱 포장재에 담긴 음식을 사게 된다”고 말했다.

식품 포장재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종류별로 구분했을 때 이 중 비닐류가 3만5177개(33.1%)로 가장 많았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비닐 일부는 재활용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립하거나 태워서 시멘트 소성로나 발전소에서 고형연료(SRF)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분리 배출을 하더라도 비닐이 물리적으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극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전 세계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은 9%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피스는 올해 역시 참가자들이 입력한 플라스틱 쓰레기 데이터를 분석해 이르면 11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내놓는다. 보고서에서는 기업의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량도 공개된다. 이를 토대로 기업에 적극적인 플라스틱 줄이기를 강조할 계획이다. 그린피스 김나영 매니저는 “최근 기업들이 생분해가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특정 온도에서만 분해되는 등 그 조건이 까다롭다. 근본적이고 빠른 해결책은 사용량 감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플라스틱#그린피스#플콕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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