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향한 예술, 거장의 시선… 모두를 위한 ‘내셔널갤러리 명화展’ [책의향기 온라인]

  • 동아경제
  • 입력 2023년 7월 25일 15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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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현장. 2023.7.22 (좌)_ 신간 ‘난처한 미술 이야기_내셔널갤러리 특별판’(우)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 현장. 2023.7.22 (좌)_ 신간 ‘난처한 미술 이야기_내셔널갤러리 특별판’(우)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신간을 접하고 자꾸 생각이 나서 들썩거렸다. 주말을 앞두고 마음은 벌써 미술 전시관에 가 있었다. 빨리 만나고 싶어 마음이 들떴다. 인문학은 내가 사랑하는 인생의 주제이고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 22일 토요일에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제대로 보고 직접 느끼기로! 미술 멘토의 설명에 따라 내가 직접 작품 앞에 서서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멘토와 함께 내셔널 갤러리를 걷는 느낌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52점을 소개하는 특별전〈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지난 6월 2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개최에 맞춰 미술 멘토 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 교수는 ‘난처한(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의 시리즈로 ‘내셔널갤러리 특별판’을 출간했다.

이번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통해 소개되는 작품 대부분은 한국 땅을 처음 밟는 작품들이다. 카라바조, 터너, 티치아노, 렘브란트, 마네 등 이름만 듣던 거장의 작품들을 비로소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세기를 초월하고 국가를 넘나들며 탄생한 미술사적 유산이 한데 모인 것인데 모두 미술사적 의미가 상당한 작품들이다.

신간은 10개의 장을 통해 주요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주며 그림에 얽힌 역사적 사건, 미술사적 논쟁 등을 함께 담고 있다. 책의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서양 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 먼저 영국 내셔널갤러리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자존심 대결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왜 미술관 이름에 귀족들의 특권적 의미가 있는 왕립 로열(Royal)을 붙이지 않고, 시민과 국민을 의미하는 내셔널(National)을 붙였는지 그 시초와 ‘내셔널갤러리-국민의 미술관’으로 명명함에 따라 미술이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 가는 과정을 알려준다. 또 현재 갤러리의 가치와 규모의 웅장함을 런던에서 직접 공부한 저자가 생생하게 설명한다.

미술의 주제가 신에서 사람과 우리의 일상으로 향하는 과정과 르네상스, 종교개혁, 프랑스 대혁명, 산업혁명 등 유럽의 시대상을 조명하며 주요 작품에 다채로운 해석을 곁들인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미술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마치 거장의 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특히 올컬러로 인쇄된 다양한 그림과 친절한 가이드는 또 하나의 전시회장에 온 느낌을 선사한다. 책의 결론 격인 9장, 10장에서는 베네치아의 대가 티치아노를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선과 색채의 논쟁, 색채주의 미술의 계보, 인상주의 화가들의 색채에 대한 열망 등을 이번 명화전의 출품작들과 함께 짚어준다.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느끼고 확인해 보라는 저자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_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현장.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_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현장.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작품의 매력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후기 인상주의까지 15~20세기 초 유럽 회화의 흐름을 다룬다. 작품 앞에 서니 책 속의 활자들이 살아서 생생하게 와닿기 시작한다.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장에 전시된 그림의 섬세하고도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힘. 이런 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과감한 붓 터치, 입체적 질감, 압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색채.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현장에서 숨은 미학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된다.

전시 표제작,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작품의 첫인상이 꽤 강렬하다. 한 소년이 도마뱀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물린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데, 얼마나 꽉 물렸는지 손가락의 힘줄이 올라와 있다. 찌푸린 얼굴과 함께 묘하게 야릇한 표정도 읽힌다. 저자는 이 그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로 “도마뱀에게 물린 신체 반응을 사실적으로 그린 데다 소년을 둘러싼 사물들, 유리병에 반사된 빛이나 과일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며 그림 속 소년은 카라바조 자신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실제로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을 보면 한 화폭에 미소년과 정물화를 같이 그려 놓은 그림이 많은데, 자신이 인물화와 정물화 둘 다를 잘 그린다는 것을 과시하며 당시 로마에서 벌어지는 무절제한 삶에 위험성을 알리는 종교적 경고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쾌락과 유혹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적절히 보여주었기에 카라바조의 작품들은 종교적으로 엄격했던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역시 인물과 정물이 위아래로 나뉘어 그려진 구도인데, 미술 작품에서 과일의 상징 의미는 성적 유혹이고 소년이 손가락을 물렸다는 데에서 유혹에 빠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설이 된 거장 티치아노, 그가 남긴 것들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가 뚜렷해진다. ‘티치아노와 색채주의’ 20세기까지도 그를 열망하는 수많은 미술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티치아노, 그와 함께 미술사가 써졌다고 말하고 있다.

티치아노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티치아노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이 작품이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된 색채주의 대표 화가 티치아노의 ‘여인(달마티아의 여인)’. 한 여인의 초상과 석조 측면상을 그린 작품으로 여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인의 생기 있는 얼굴과 진홍빛 옷의 사실적 색채감과 질감이 압권이다. 저자는 책에서 피사체를 확대한 그림 사진과 X선 촬영 사진, 물감층 샘플 단면, 붓 터치를 통한 질감 표현까지 세세하게 분석하며 티치아노 화풍을 설명한다.

미술사적으로 이 그림은 회화와 조각 중 무엇이 더 우월한지를 논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여인의 초상화가 더 생생한지, 여인의 석조 측면상이 더 생생한지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회화가 조각보다 더 뛰어나다는 의미를 내포한 티치아노의 선언적 작품이다.

야코포 틴토레토 ‘빈첸초 모로시니’(좌)_디에고 벨라스케스 ‘페르난도 데 발데스 대주교’(가운데)_렘브란트 ‘63세의 자화상’(우)
야코포 틴토레토 ‘빈첸초 모로시니’(좌)_디에고 벨라스케스 ‘페르난도 데 발데스 대주교’(가운데)_렘브란트 ‘63세의 자화상’(우)

색채주의 후계자들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좌)_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사람’(우)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좌)_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욕하는 사람’(우)
티치아노의 명성은 시대를 거듭하며 계속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야코포 틴토레토의 ‘빈첸초 모로시니’ 초상화를 보면 황금색, 붉은색 등 화려한 색채감을 읽을 수 있다. 17세기 벨라스케스의 ‘페르난도 데 발데스 대주교’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63세의 자화상’도 기법적인 면에서 티치아노의 영향력이 충분히 느껴진다. 19세기 스페인 화가 고야의 작품 ‘이사벨 데 포르셀 부인’은 경쾌하고 빠른 붓 터치로 검정 숄을 생생하게 표현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19~20세기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색채주의에 영향을 받는데, 마네·르누아르·반 고흐·모네 등의 작품을 그 맥락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신효정 동아닷컴 기자 hj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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