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는 누가 말리나[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0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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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2022년 3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출구조사 결과 근소한 차이로 이긴다고 발표되자 송영길 당시 당 대표(왼쪽)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옆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동아일보 DB
요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피아구분 없는 ‘난사’가 화제입니다. 2년여 전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과 싸우던 자신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내쫓은 거라고 주장하고 있죠.

“(당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사의를 표명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중간에 농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날 자르려면 국무총리를 통해 해임 건의를 해주면 좋겠다, 자의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고 했다. 나를 유임시켜야 수습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문 전 대통령에게) 갔다. 결론은 똑같았다. 허무한 결론이었다” (6월 30일 유튜브 방송)

“저의 사직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2020년 12월 16일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의결이 새벽에 이뤄지고 아침에 출근 직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사직서를 내달라고 전화를 받았으나 명확하게 거절했습니다. 오후에 제가 들고 간 징계 의결서가 대통령 서명으로 집행된 직후 바로 대통령의 ‘물러나 달라’는 말씀으로 제 거취는 그 순간 임명권자가 해임한 것이므로 저의 사직서가 필요 없어져 버렸습니다.”(7월 3일 페이스북)

“이낙연 전 대표가 2021년 재·보궐선거 때문에 (나한테) 물러나라고 했는데, 그러면 안 됐다.”(7월 3일 KBS 방송)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한 온라인뉴스의 유튜브 방송에 나온 모습. 추 전 장관은 2년여 전 자신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갈등 속에 물러나게 됐던 배경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를 지목하고 있다. 오마이TV 캡처
벌써 몇 년도 더 된 일에 대해 굳이 지금, 이 시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고 야권에선 “내년 총선 출사표”(민주당 관계자) “정치적 재기를 하려는 것”,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포섭하려는 탁란 정치”(조응천 의원) 라는 해석이 줄 잇고 있습니다.

모두를 ‘돌려 까기’ 하는 추 전 대표도 이재명 대표에겐 우호적입니다. 추 전 대표는 3일 KBS 방송에서 이 대표를 ‘사법 피해자’라고 두둔하며 “검찰 정권이 사법리스크를 만들어가는 건데, 이 사법 피해자 보고 ‘당신 때문’이라고 집안싸움에 전념하고 있어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당내 계파 갈등으로 이 대표를 괴롭힐 때가 아니라는 거죠.

다만 친명(친이재명) 지도부도 추 전 대표의 ‘러브콜’은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친명’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당연히 부담스럽다”(5일 SBS라디오)라고 했고, 이 대표 최측근 모임인 7인회 소속 김영진 의원도 “추 전 대표와 이 대표는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러브콜을 보내고 안 보내고 할 사이가 아니다”(4일 YTN 라디오) 라고 부랴부랴 선을 그었습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우리 당에 추미애는 ‘조국 급’”이라며 “추미애 얘기가 많이 나올수록총선엔 악영향”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나마 추 전 장관이 총선 한참 전에 떠들어서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추 전 장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다른 원로들도 이에 질세라 각자 자기 장사에 나서는 역대급으로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2021년 전당대회 또 돈봉투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가 대표적이죠. 송 전 대표는 6월 22일 MBC라디오에서 “(선거운동원도) 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니냐”(6월 22일 MBC라디오)라고 했죠. 이에 “금품을 살포한 적 없다고 극구 부인했으면서, 지금은 제도를 탓하며 인간적인 정에 호소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나”(국민의힘 신주호 상근부대변인)라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6월 28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왼쪽)가 변희재 씨의 ‘태블릿PC 조작설’ 주장이 설득력 있다며 동의를 표했다. (유튜브 매물쇼 갈무리) 뉴스1
지난 6월 28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왼쪽)가 변희재 씨의 ‘태블릿PC 조작설’ 주장이 설득력 있다며 동의를 표했다. (유튜브 매물쇼 갈무리) 뉴스1
지난 6월 28일 청주에서 열린 좌우합작 집회에서 극우 유튜버로 알려진 변희재 씨(앞줄 맨 왼쪽)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에서 3번째)가 나란히 행진하고 있다. (유튜브 서울의소리 갈무리) 뉴스1
지난 6월 28일 청주에서 열린 좌우합작 집회에서 극우 유튜버로 알려진 변희재 씨(앞줄 맨 왼쪽)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에서 3번째)가 나란히 행진하고 있다. (유튜브 서울의소리 갈무리) 뉴스1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핸드폰 포맷은 한 번씩 하는 것 아니냐”(6월 29일 BBS 라디오)라며 ‘증거인멸’ 가능성을 일축하던 송 전 대표는 요즘은 극우 성향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손잡고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설’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더니, 어쩌면 진정한 좌우 통합일지도 모르겠네요.

“(태블릿PC 조작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유감스럽다”(이원석 검찰총장), “살아생전에 이런(송 전 대표와 변 씨가 함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구나”(조응천 의원) 등 경악하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죠. 더 나아가 ‘검사 탄핵’까지 주장하던 송 전 대표는 “지금 한가하게 책방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문 전 대통령을 저격하기도 했습니다.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달 한 유튜브 방송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금 한가하게 책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달 한 유튜브 방송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금 한가하게 책방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캡처
민주당 내 ‘OB’ 중의 ‘OB’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요즘 연일 등판 중입니다. 박 전 원장은 7월 5일 CBS라디오에서 추 전 장관을 향해 “회고록에나 쓸 얘기를 왜 지금 하나. 자기가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했고, 송 전 대표를 향해서도 “자숙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도 당의 분열을 일으킬 법한 아슬아슬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죠. “문 전 대통령이 한가하게 책방할 때가 아니란 송 전 대표 말에는 동의한다”던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주의’ 등의 얘기를 할 땐 전직 대통령으로서 말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빨리 (이 대표와) 손잡고 대여투쟁을 해야지, 왜 한가하게 돌아다니냐”, “문 전 대통령도 이 전 대표에게 이재명 대표를 만나라고 했을 것”이라고 저격했습니다.
내년 총선 출마를 공식화한 박지원 전 국정원장. 그는 7월 5일 CBS라디오 방송에 서 “왜 한가하게 돌아다니냐”며 이낙연 전 대표에게 이재명 대표와 만날 것을 촉구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그 와중에 자신의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은 깨알같이 홍보합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 목포나 해남·진도·완도를 고려하고 있다”라 합니다.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엔 “국가라는 건 김대중 대통령 말씀대로 노장청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게 그의 답입니다.

사고뭉치 원로들과 함께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현역 의원들은 애가 탑니다.

한 재선 의원은 “우리는 지금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한 상황인데, 치어리더들만 잔뜩 들어와서 이미 구장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 관중석 쪽만 잔뜩 흥분시키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한 지도부 소속 의원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김남국 의원 탓을 하더군요. 지난 총선 때 불어 닥친 ‘세대교체론’ 속 당선된 김 의원 같은 젊은 의원들이 코인 사태 등 불미스러운 논란만 일으킨 탓에 OB들에게 “역시 내가 다시 나서줘야겠군”이라고 정신 승리할 명분을 줬다는 겁니다.

결국 이들을 자제시킬 자는 누구인가, 이들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를 두고도 당내 고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이 위기일 땐 통상 원로들이 나서서 당의 어른으로서 ‘빌런’들을 제압하고 리스크를 수습해왔는데 지금은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김두관 의원은 “당이 어렵기 때문에 고문들이 당이 통합하고 단합하는 데 역할을 해 주면 좋은데. 오히려 불을 질러놓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7월 7일 BBS라디오)라고 했습니다. 한 야권 관계자도 “원래 당이 어지러울 때 마지막 카드가 ‘원로’”라며 “원로가 쓴소리하고 혼을 내는 모양새로 정리를 해왔는데 지금은 원로들이 가장 주책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른’이 없다면 ‘리더’인 당 대표가 나서야 하는데, 역시 이재명 대표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있죠. 한 지도부 소속 의원은 “이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사람이냐”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원내지도부 의원은 “이럴 때 지도부가 나서서 뭐라고 하면 (추 전 장관이나 송 전 대표 모두) 더 좋아할 사람들”이라며 “당이 자신들을 핍박한다고 더 이슈를 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대응이 답이라는 거죠.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의에서 공개발언하고 있다. 혁신위는 이날 송영길 전 대표와 ‘일본 문자 논란’을 일으킨 김영주 국회 부의장, ‘분당’ 가능성을 시사한 이상민 의원 실명을 언급하며 “오합지졸” “콩가루 집안”이라고 비판했다. 뉴스1
당내에선 “그럼 혁신위라도 나서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혁신위는 6일 최근 문제를 일으킨 의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공개 ‘쓴소리’를 하면서도 추 전 장관은 언급하지 않았더군요. 당 관계자는 “솔직히 누가 봐도 지금 당의 가장 큰 리스크가 추미애인데, 추미애만 빼고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혁신위는 이번 주 중 당 고문들과의 간담회를 추진 중이라는데, 추 전 장관도 전직 당 대표 출신으로, 고문직을 맡고 있죠. 추 전 장관이 혁신위 간담회에 참석할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결국 떠드는 사람만 있고, 말리는 사람은 없네요. 내년 총선까지는 아직 9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이걸 지켜봐야 하는 국민만 고통스럽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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