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당했어도, 피해 있을 곳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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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법’ 내달 시행 앞두고
17개 지자체중 10곳 임시거처 없어
장-단기시설 모두 갖춘 곳은 단 2곳

스토킹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담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다음 달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안전망이 크게 부족해 법이 시행돼도 실질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 즉 피해자용 임시 거처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 17개 지자체 가운데 10곳에 아직 스토킹 피해자용 임시 거처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스토킹을 비롯한 ‘5대 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법만 만들 게 아니라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할 인프라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스토킹 가장 많은 경기도 보호시설 없어

정부가 스토킹 피해자를 위해 지원하는 임시 거처는 크게 ‘긴급 주거지원’과 ‘임대주택 주거지원’ 등 2가지다. 긴급 주거지원은 피해자가 스토킹 신고를 한 직후 등 급하게 가해자로부터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7일 안팎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기 시설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형태로 제공된다.

반면 임대주택 주거지원은 상대적으로 장기 보호시설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준비할 때와 같이 좀 더 긴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집으로, 기본 3개월을 머무르게 된다. 두 시설이 이름은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른 만큼 두 가지 시설이 모두 갖춰져야 기본적인 ‘안전망’이 완비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러한 장·단기 임시 거처를 모두 마련해둔 지자체는 부산과 전남 등 2곳에 불과하다. 이 외에 충남과 전남에는 긴급 주거지원(단기) 시설만, 대전과 강원에는 임대주택 주거지원(장기) 시설만 각각 마련돼 있다. 서울은 이와 별개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중 3곳을 스토킹 피해자 전용 시설로 마련했다.

나머지 지자체 10곳에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스토킹 피해자 임시 거처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특히 지난해 경찰의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가 238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경기 지역도 준비된 임시 거처가 ‘0곳’이다. 검거 건수 748건으로 전국에서 3번째인 인천도 마찬가지다.

● “가폭-성폭 보호시설, 스토킹 피해자에 안 맞아”

스토킹 피해자 거주 지역에 전용 임시 거처가 없는 경우 피해자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피해자들의 특성이 다른 만큼 이들 시설은 스토킹 피해자가 머무르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가해자가 시설 위치를 알아채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 입소 기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 피해자의 경우 신고 이후에도 회사나 학교 등 사회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비율이 높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고립된 시설에는 머무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가부도 스토킹 피해자용 임시 거처를 더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달 말까지 지자체들을 대상으로 보호시설 시범사업 참여 추가 공모를 받았고, 다음 주중 보호시설을 운영할 지자체 5곳을 추가로 선정해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17개 시도 전체에 보호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재정 당국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스토킹#피해자 보호법#임시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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