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6일 11시 49분


코멘트
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9일 일본 시가현립 비와호환경과학연구센터에서 한 연구원이 충북도청 연수단을 상대로 수질검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충북도 제공
장기우 기자
장기우 기자
“비와(琵琶)호에는 (한국의)상수원보호구역과 같은 규제가 없다. 가정은 가정대로, 공장은 공장대로 오·폐수 관리를 철저히 해 내보내기 때문에 1급수 수질을 유지하니 그런 걸 적용할 필요가 없다.”

8일 오후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중심인 오사카와 인접한 오쓰시에 위치한 시가(滋賀)현청 2층 회의실. 시가현 관광진흥국 가와사키 나오토 실장의 답변을 들은 한국 방문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간사이 지방의 생명수이자 젖줄이며, 오사카와 교토는 물론 나고야 지방 1400만 명의 상수원인 비와호의 환경을 보호하는 규제 장치가 없다는 말에 모두 의아해했다.

8일 일본 시가현청을 방문한 충북도청 방문단을 상대로 현청 관계자가 비와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사가=장기우 기자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은 민선 8기 충북의 최대 과제인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실현을 위한 해외 선진지 견학에 나선 충북도청 소속 공무원들이다.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는 충북도내 757개의 호수·저수지와 그 주변에 어우러진 백두대간, 종교·역사·문화유산 등을 연계해 국내 최대 관광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물’과 관련된 환경규제가 많다 보니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해외 선진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나오토 실장은 “호수로 물이 흘러드는 상류지역 마을에서는 가정마다 단독으로 처리가 안되면 합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공장들도 마찬가지다 보니 이곳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걸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의 ‘이유있는’ 설명이 이어지면서 방문객들의 의아함은 점차 부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琵琶)호는 440만 년 전에 생성된 자연호다. 면적은 서울시보다 큰 670㎢이며, 둘레는 235㎞에 달한다. 호수에는 기선이 운항되고 다양한 수상레포츠가 연중 이뤄진다. 낚시와 캠핑을 즐기는 이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연중 1급수를 유지하는 비와호도 위기가 있었다. 일본 고도 경제성장기인 1960, 70년대 비와호 주변의 제조업 공장과 주택의 폐수로 1977년 적조가 나타났다. 심각함을 느낀 민·관은 ‘합성세제 사용금지 운동’과 ‘부영양화 방지 조례’ 제정 등 수질정화 운동을 벌였다. 호수로 흘러드는 생활하수나 산업·축산폐수 등 점오염원(點汚染源)을 잡아낸 것이다.

9일 일본 시가현립 비와호환경과학연구센터를 찾은 충북도청 연수단을 상대로 비와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오쓰=장기우기자
이를 계기로 1982년 시가현 지방정부가 만든 환경 기준을 일본 정부가 채택, 수질 오염 방제에 관한 환경법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정부의 예산지원도 한몫했다. 나오토 실장은 “민·관의 발 빠른 대처로 적조 현상은 사라지고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라며 “워낙 강하고 적극적으로 오염대책을 적용하다 보니 관광개발 때 환경단체들의 반대도 없다”고 말했다. 시가현은 나아가 ‘시가리즘’이라는 관광정책도 추진 중이다. 호수의 수질을 극복하고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 걸 바탕으로 호수와 400만 년간 이어온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발전하고 이용할지에 관심을 둔 것이다.

시가현의 사례는 수질 보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적극 나선 민·관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어떤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점오염원을 잡아내면 별도의 수질규제 없이도 사시사철 맑은 물을 늘 우리 곁에서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중앙정부의 부족한 예산지원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청호를 낀 지자체의 부단체장을 지낸 공무원은 “대청호 상류의 점오염원을 막기 위한 방안을 찾아 환경부에 찾아갔는데 ‘순위 타령’을 하며 밀려난 적이 있다”라며 “환경부가 오히려 돈을 싸들고 지자체를 찾아 오염원을 막는 걸 도와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위가 맑으면 아래도 맑을 수 있지만, 다양한 수질규제로 아래만 맑게 한다고 위가 맑아지지는 않는다. 아랫물을 맑게 해 위로 올려보낼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갈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속담은 우리 조상들의 물관리 교훈을 담은 게 아닌가 싶다. 아랫물 지역에서 환경규제가 아예 필요 없는 그런 날을 위해 윗물을 맑게 하는데 정부가 좀 더 힘써야 한다.

오쓰=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