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근형]생의 마지막 시간, 어디서 보내겠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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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 사회부 차장
유근형 사회부 차장
80대 암 환자 A 씨는 지난해 대학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가족 일부가 만류했지만 “병원에서 죽기 싫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생과 이별할 결심’은 3주를 채 가지 못했다. 80대 아내는 간호를 버거워했다. 자식들이 매일 집에 들를 수도 없었다. 하루 8시간에 15만 원이나 하는 방문보호사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상태가 더 나빠지면 아내가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주변 요양병원과 월 80만 원에 3개월 계약을 맺고 들어갔다. ‘죽으러 간다’는 생각에 참담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대면 면회 제한 때문에 가족과는 하루 한 번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A 씨의 아들은 “마지막을 이렇게밖에 못 모신다는 생각에 뵐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쓸쓸한 마지막은 돈의 유무와 무관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올 초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선 환자 보호자 간 난투극이 벌어졌다. 자식들은 수백억 원대 자산가인 환자를 집으로 모실지, 고급 요양병원에 둘지를 두고 주먹다짐을 했다. 가족 일부가 다치고 경찰도 출동했다. 환자는 해외에 거주하는 다른 자녀의 귀국을 기다리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서 요양병원·시설은 ‘요양’ 역할만 하진 않는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종착지’로서의 기능을 더 많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병실에서 가족과 분리된 채 이별할 시간도 제대로 못 갖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

60대의 경우 병원에서 사망한 비율이 2010년 75.1%에서 2019년 79.4%로 늘었다. 70대(73.3%→82.9%)와 80대(63.3%→78.2%)는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 최근 요양병원이 급증하면서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는 시스템이 일반화된 결과다. 자택(37.7%)에서 임종하길 원하는 고령층이 병원(19.3%)의 2배에 이르는 점(한국보건사회연구원)을 감안하면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에선 죽음을 어디서 맞이할지에 대한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다양하다. 특히 재택임종이 늘어나는 추세다. 가장 편안한 집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나는 환자들이 고통은 더 적고, 평온한 죽음을 맞는다는 판단에서다. 유족들의 슬픔도 덜하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사회가 된 일본은 병원 내 임종 비율을 2005년 82.4%에서 2020년 69.9%까지 줄였다. 아파트 등 밀집 거주지역에서 사망해도 단지 내 공용 공간에서 장례를 진행한다. 재택의료가 걸음마 수준인 한국에선 꿈꾸기 어려운 일이다.

일본의 40대 간호사 모리야마 후미노리 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의 숨이 멎을 때 박수를 쳐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한다(에세이 ‘앤드 오브 라이프’·2020년).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박수받으며 세상과 이별했던 환자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모리야마 씨가 박수 속에 눈을 감자 그의 아내는 “잘 버텼어. 멋졌어. 고마워”라며 남편을 보냈다. 한국에서도 존엄한 마무리가 지금보다 늘어나길 기대한다. ‘웰다잉’이 많아지는 만큼 우리 사회의 품격도 조금은 높아질 것이다.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암 환자#시한부#생의 마지막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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