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면죄부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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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재난안전법 들고 나온 특수본
전문가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 지적

장원재 사회부장
장원재 사회부장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13일 수사 결과 발표를 며칠 앞두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을 때 딱히 놀라진 않았다. 지난해 11월 2일 출범 후 상급기관으로 갈수록 소극적이었던 특수본의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근거로 내세운 건 다소 의외였다.

특수본은 재난안전법상으로 볼 때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태원동에 한정된 사고라 대비와 대응 책임이 기초자치단체인 용산구와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광역자치단체(서울시)와 중앙행정기관(행안부)의 경우 “구체적 주의 의무가 부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기 힘들다고 했다.

이런 법리 해석이 특수본 출범 직후 나왔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출범 때는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하더니 73일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법리적 한계를 지적한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처음부터 한계를 알고도 성역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했거나, 결론을 내 놓고 막판에 법리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재난안전법에 대한 특수본의 해석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난안전법 시행령은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가 매우 크고 영향이 광범위한 경우’ 광역단체장이 재난 응급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게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이태원 사고는 2000년 이후 3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다.

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통화한 재난안전법 전문가들은 모두 “특수본이 법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 서초구를 상대로 배상을 이끌어낸 김영희 변호사는 “핼러윈 이벤트처럼 매년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에서 예방 조치를 취할 법적 책임은 당연히 서울시와 행안부에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을 맡고 있는 홍지백 변호사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서울시의 경우 이태원역과 서울교통공사 등을 통해 사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걸로 보인다. 서울시에도 일부 지휘 감독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특수본 수사 결과가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69명의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도 검찰이 관련자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후 유족들이 충북도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졌다.

또 다른 변호사도 “재난안전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법인 만큼 취지를 생각하면 소극적으로 해석하기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게 맞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특수본의 면책 시도가 성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먼저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유족들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해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책임의 정도는 두 손으로 치명적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고 했다. 인명이 희생되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마지막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건 국민들이다. 특수본이 줄 수 있는 건 면죄부가 아니라 잠깐의 안도감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면죄부#재난안전법#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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