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만큼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1일 1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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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김민석 씨

‘혹시 이 세상 어딘가에 외로운 고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줄 단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나눔’에서 근무하는 김민석 씨(30·사진)는 시가 보낸 장례의뢰 공문을 받을 때면 늘 서류에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고인의 인연을 떠올린다. “가족관계증명서와 제적등본, 혼인관계증명서가 담지 못하는 인연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김민석 씨. 본인 제공
김민석 씨. 본인 제공


2020년 8월 도착한 장례의뢰 공문 속에서도 고인에 대해 알 수 있는 단서는 거의 없었다. 사체검안서에는 ‘기타 및 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인을 알 수 없다는 뜻. 공문에는 고인이 살았던 서울 성동구의 한 여관 주소가 나와 있었다. 한 줄뿐이었지만 고인을 알 만한 누군가에게 부고를 전해야 하는 그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혹시 여관 주인이 고인과 생전 연을 맺지 않았을까. 그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그날 퇴근 뒤 여관을 찾아갔다.

“고인에 대해 아는 건 주소뿐이지만 찾아갔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고인이 애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고인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기도해주는 여관 주인을 만났어요. 그는 ‘무연고’가 아니었던 겁니다.”



최근 신간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지식의숲)을 펴낸 김 씨는 11일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죽음 이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고인을 ‘무연고 사망자’라고 부르며 애도의 의식을 제공하지 않고 시신을 처리해왔다”며 “공영장례 제도는 장례를 치르며 고인을 존엄한 인간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영장례’는 가족 등 연고가 없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대신 장례를 지원하는 제도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씨는 “조례는 있지만 인력과 지원 예산이 부족해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는 지자체도 많다”며 “특히 고인의 부고를 온라인 뉴스 등을 통해 알려 고인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서울시뿐”이라고 했다. “공영장례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장례 공간뿐 아니라 고인이 누군가에게 애도 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까지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지난해 9월 나눔과나눔 직원들이 ‘무연고 사망자’인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모습. 나눔과나눔 제공


김 씨는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얼굴을 마주할 지인들을 위해 영정사진도 만든다. 김 씨는 “대부분 영정을 미리 찍어두지 않기 때문에 단체 사진 속에 아주 작게 나온 고인의 얼굴 일부분을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런 사진을 찾게 되면 사진 위에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양복이나 한복을 덧그린다”고 했다.

“혹여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온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합니다. 화장장에 고인의 위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외로워 보이니까요. 어떻게든 얼굴이 나온 작은 사진이라도 찾아서 가장 멋진 옷을 입혀 영정을 만들어드립니다.”

때로 고인의 영정을 보고 생전 일면식이 전혀 없는 시민들이 찾아와 헌화를 하기도 한다고. 그는 “왜 이들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누군가를 위해 헌화를 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며 “그건 아마도 ‘믿음’ 때문일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 아무렇게나 처리되고 버려지는 사물이 아니라,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애도를 받을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믿음이요. 저는 그런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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