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강풍-고산병 뚫고… 포스코, 해발 4000m 고원서 ‘하얀 금’ 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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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염수리튬 생산현장 르포
지하 400m서 끌어올린 염수… 3, 4개월 정제후 리튬 만들어
4년만에 생산시설 모습 갖춰 2024년부터 年 2만5000t 생산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살타주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인근에 건설 중인 1단계 리튬 생산 설비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2024년 4월 완공 예정인 이 공장에서는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하기 위한 중간재인 인산리튬을 생산하게 된다(왼쪽 사진). 본보 
기자가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데모플랜트(시험 공장)에서 생산한 인산리튬을 들어 보였다. 포스코홀딩스 제공·살타=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살타주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인근에 건설 중인 1단계 리튬 생산 설비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2024년 4월 완공 예정인 이 공장에서는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하기 위한 중간재인 인산리튬을 생산하게 된다(왼쪽 사진). 본보 기자가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데모플랜트(시험 공장)에서 생산한 인산리튬을 들어 보였다. 포스코홀딩스 제공·살타=이건혁 기자 gun@donga.com
12일(현지 시간) 지구 반대편,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약 1만8000km 떨어진 아르헨티나 서북부 살타주의 해발 약 4000m 고원. 화성을 연상케 하는 황량한 땅 위로 포스코그룹이 조성하고 있는 염수리튬 프로젝트 설비 전경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내걸린 태극기 사이로 크레인과 굴착기,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포스코그룹이 리튬을 채굴하고 있는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다.

리튬은 ‘하얀 금’으로도 불린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핵심광물인 리튬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포스코홀딩스가 리튬 확보를 위해 아르헨티나로 진출한 지 4년 만에 생산 시설이 하나둘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시속 50km를 넘나드는 바람, 부족한 산소가 위협하는 고산병 등 악조건과 싸우고 있지만 수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어 가는 만큼 보람도 큽니다.”

이곳 생활이 벌써 4년째인 포스코아르헨티나 염수리튬 생산총괄 오재훈 상무보는 2층 높이 리튬 공장의 골조를 가리키며 밝게 웃었다. 포스코홀딩스는 2018년 8월 이 호수에서 리튬을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사들였다. 2019년 데모플랜트 설치에 들어가 이듬해 시험 생산을 통해 생산성을 검증했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아르헨티나 1단계 리튬 공장을 착공한 것이다. 이 공장은 2024년 4월 준공 후 시험 가동을 거쳐 리튬 중간재 연 2만5000t을 생산할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2단계 투자를 결정했다. 향후 3, 4단계까지 투자를 늘려 2030년 국내외 공장에서 염수리튬 연 12만 t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00kWh(킬로와트시)급 전기차 약 240만 대에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여기에 국내 폐배터리 재활용 리튬 3만 t, 호주산 광석에서 추출한 리튬 15만 t 등을 더하면 연간 생산량은 30만 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염수리튬은 포스코그룹 리튬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지하 평균 400m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염수에는 L당 0.9g의 리튬이 함유돼 있다. 이 염수를 3∼4개월간 폰드(물을 자연 증발시키는 설비)에 가둬 물을 제거한 뒤, 공장에서 마그네슘과 칼슘 등 불순물을 제거한다. 이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수산화리튬을 제작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북쪽에 서울 면적(605km²)의 약 42%인 255km²에 대한 채굴권을 확보했다. 이곳에 22개의 관정(지하 염수를 끌어올리는 설비)을 뚫고, 4km² 넓이의 폰드를 다수 설치할 예정이다. 이 염호 남쪽에서는 미국 기업 라이번트가 리튬을 생산 중인데, 이 회사의 2030년 목표가 연 6.5만 t이다. 포스코홀딩스의 계획대로라면 같은 시기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 1위, 글로벌 3위권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다.

포스코홀딩스의 리튬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면 한국 배터리산업 전체 경쟁력 상승도 기대된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배터리 완제품 시장의 약 56%를 차지하고 있지만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등 핵심 광물은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공급망 체계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산화리튬·수산화리튬은 81.2%를 중국에, 탄산리튬은 89.3%를 칠레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리튬 사업이 무조건 ‘황금 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리튬 등 희토류 개발 프로젝트의 최근 10년 성공률은 1.5%에 불과하다. 포스코그룹 현지 직원은 “험난한 자연 조건, 아르헨티나 정부의 불확실한 정책보다 자원 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는 게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리튬 사업 성패를 좌우할 가격 전망도 전문가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현재 t당 5만 달러 수준인 탄산리튬이 공급 과잉으로 2023년 1만6000달러까지 폭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초과 수요가 계속돼 2030년에는 t당 5만 달러대에 안착할 것으로 예측했다.


살타=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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