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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우리 말에도 귀 기울여 주세요”… 아동 의견 담은 아동기본법 제정 촉구

입력 2022-11-30 03:00업데이트 2022-1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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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다시 희망으로]
세이브더칠드런
35개국 ‘국제 아동 삶의 질’ 비교
한국이 아동 행복도 31위로 최하위, 아동 중심의 정책-제도 마련 절실
아동이 그린 행복한 대한민국. 세이브더칠드런 제공아동이 그린 행복한 대한민국.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만 학생이기 전에 아동, 청소년이잖아요. 우리의 본분은 놀면서 사회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요?” “아동을 깔보는 어투를 제재하면 좋겠어요.” “장애를 가진 청소년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 사이에 배움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돼요.” “아동이 인터넷 환경에서 적합하지 않은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해요.” “우리도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예요. 아동이 내는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동이 아동을 위한 법을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될까?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아동기본법 제정을 앞두고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9월 만 10세부터 18세까지 아동·청소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14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과에 따르면, 아동기본법의 당사자인 아동들은 놀고 여가를 즐기며 경험을 통해 성장할 권리, 나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아동학대와 성폭력, 온라인에서의 위협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의견을 존중받고 참여할 권리 등이 법에 담기기를 희망했다.

우리나라는 31년 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고도 아동기본법 같은 이행 법률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등 개선이 더딘 상황이다. 정부는 아동을 보호와 복지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권리 보장의 관점으로 전환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020년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에서 아동기본법 제정 계획을 밝혔다. 2023년 제정을 목표로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은 올해 7월부터 아동기본법 관련 토론회를 개최해 아동 건강권 보장 강화와 아동의 쉴 권리, 디지털 사회 아동 참여와 보호의 조화 등을 논의했다. 이를 통해 아동 중심의 정책과 제도가 마련될 법적 토대를 갖춤과 동시에 아동인권 분야의 진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한국의 아동인권 현실은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는 전년보다 27.6% 증가한 5만3932건이었으며, 이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3만7605건으로 전년 대비 21.7% 증가했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40명에 이르며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인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으로 사망한 아동은 14명이라는 자료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아동·청소년 성범죄 동향 분석 결과를 보면, 성범죄 피해를 입은 아동은 2020년 기준 3397명에 이른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5개국 만 10세 아동의 행복도를 비교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 한국 아동은 최하위권인 31위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제도가 아동이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하기 어렵게 만들고 아동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과도하게 경쟁적인 교육 환경 속에 학생 4명 중 1명은 학업 성적으로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했다는 한 교육시민단체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청소년 권리 현황 조사를 살펴보면, 아동들은 여가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 건강권, 참여권, 보호권, 교육권 등 많은 부분에서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설문에 참여한 아동 10명 중 4명만이 우리나라가 아동·청소년이 살기에 좋다고 답했으며,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28.9%였다. 이 중 성장에 필요한 휴식과 놀이를 위한 여가권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응답이 26.2%로 가장 낮았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응답도 31.2%로 낮았다. 대표적인 아동 차별 현상인 노키즈존에 대해 한 아동은 “아동들도 사회에 있는 것을 누릴 권리가 있고 어우러질 권리가 있는데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 같아요. 아동권리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 밖에도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려 있다며 “중상층인 집은 권리가 보장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차별받는 경우나 어려움이 대물림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환경에 따른 차별과 빈부의 대물림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참여권을 보장받고 있다고 답한 아동은 33.6%였다.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는 많아진 반면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실제 반영이 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동이 많았다. 건강권도 36.8%만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몸은 건강한데 마음은 안 건강해요” “학원에 다니는 시간이 길어져 중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밥도 맨날 안 좋은 것만 먹을 수밖에 없어요”와 같이 경쟁적인 환경과 과도한 학업에 따른 정신건강 문제를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호권과 교육권도 보장받고 있다고 응답한 아동은 각각 43.5%와 48.2%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훈육을 핑계로 때리거나 폭언을 하면 안된다’ ‘아동을 피해 대상으로 한 범죄의 형벌은 강력해야 하고, 다시는 가해자가 접촉할 수 없도록 조치가 필요하다’ ‘대학입시 문제로 초교, 중학교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 아동학대나 성폭력 등 아동 대상 범죄가 지속되는 점, 입시로 획일화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러한 열악한 아동인권 현실은 아동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조사 참여자의 절대 다수인 94.3%가 아동·청소년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구호에만 머무르고 있는 아동인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함을 아동의 목소리로 확인한 셈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9일 ‘아동기본법을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안내서’ 사이트를 열고 아동기본법의 필요성과 아동이 말하는 대한민국 아동권리 현주소 및 아동이 바라는 아동기본법의 내용을 알렸다. 30일에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 4차 국가별 정례인권 검토 사전심의에 시민사회단체 대표로 참가해 한국의 아동인권 현황과 아동기본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각국의 유엔 대표부에 설명한다. 또한 내년 아동기본법이 제정될 때까지 아동의 목소리를 모으고 법에 아동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안소희 기자 ash03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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