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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글로벌 반도체 경쟁, 시간과의 싸움이다[동아시론/황철성]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입력 2022-10-22 03:00업데이트 2022-10-2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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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인 지금 인프라 확충해야 호황 때 결실
美·대만 대폭 정책 지원하는데, 韓 답보상태
‘K칩스법’ 통과시켜 경제·안보 둘 다 잡아야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14억 인구의 중국의 압력에 맞서 2400만 인구의 대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실리콘 방패’로 불리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에서 나온다. 우리는 최근 부쩍 높아진 북한의 군사적 시위와 핵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실리콘 방패를 갖고 있는가? 기흥, 화성, 평택, 이천, 청주에 있는 거대한 메모리 생산 공장들이 그런 방패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무기도 갈고닦지 않으면 성능에 문제가 생기듯이 이런 공장들도 계속해서 혁신하고 최신 공장을 짓지 않으면 방패는 윤기를 잃고 쇠락한다. 특히 반도체 기술의 가장 강력한 지레를 쥐고 있는 미국이 자국 내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보유하려는 움직임은 우리의 방패를 더욱 작고 약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제하기 위해 최근 발동한 반도체 산업 육성법(Chips and Science Act)과 첨단 장비 수출 통제는 중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산 기지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있다. 최악의 경우 그동안의 대규모 투자를 포기하고 철수를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막대한 국내 투자는 경제적인 이득과 더불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실리콘 방패를 크고 단단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크게 환영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국회 ‘반도체 특위’를 통하여 첨단 산업 진흥과 이를 보조하는 조세감면특별법의 개정을 통한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률적 뒷받침 노력인 ‘K칩스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도체 산업 및 관련 이해 당사자들의 첨예한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가 산적해 있고 이는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다. 법률이 강제하지 않으면 정치권과 관료 조직은 문제 해결을 위하여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올 8월에 법률 초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 반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법이 민주, 공화 양당의 발의로 추진되어 일사천리로 성립된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뭘 믿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면서 TSMC에 분기별 반도체 매출 1위를 내준 점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예상에 따른 국내 반도체 기업의 주가 하락이 수백만 소액 투자자들의 심정을 옭아매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주기적으로 등락을 반복하는 패턴을 보여 왔고, 사실 지난 2년간에 걸친 호황이 코로나19와 관련된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생각하면 현재의 일시적인 매출 감소나 주가 하락은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훨씬 중요한 문제는 다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들의 기술 수준과 생산 능력이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은 불황기를 호황기에는 바빠서 할 수 없었던 공장을 정비하고, 부족한 인프라(전기, 용수, 부지 등)를 갖추는 기회로 활용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K칩스법’이 추진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경쟁자들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훨훨 날고 있는데 우리 기업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등으로 생산 기지가 옮겨지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미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수백조 원 단위의 투자 계획을 언급하고 있고,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마이크론)이 140조 원의 자국 내 투자를 발표한 상황이다. 이런 투자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 인력의 공급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자국 내 대학의 연구개발 지원과 더불어 해외 고급 인력을 유인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우수한 기술 인력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고급 인력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으니 대처 방안은 고급 인력 양성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K칩스법’에는 이와 같은 방안도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지방 소멸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 법에 대한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문제가 있으면 당사자 간의 활발한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소액 주주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정치권이 바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게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하고, 목소리를 높여 우리 후손에게 부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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