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교만도 못한 대학 실습실”… 이런데도 20조 쌓아만 둘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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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쓰고 남은 적립금이 올해 20조5641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왔다. 2017년 3000억 원 남짓 했던 적립금은 지난해 5조 원 넘는 규모로 급증했는데 1년 만에 다시 4배로 불어난 것이다. 세수 호황으로 내국세에 연동된 교육청의 교부금 규모가 5년 전 46조6000억 원에서 올해 81조3000억 원으로 급증한 덕분이다.

재정이 풍부한 만큼 씀씀이도 헤퍼졌다. 상당수 교육청들이 초중고교 학생들 전원에게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나눠주고, 교복비와 수학여행비 같은 명목으로 수십만 원씩 현금을 지급해 물의를 빚었다. 그러고도 남은 돈을 쌓아두려고 기금을 늘리는 바람에 5년 전 9개이던 교육청 기금 수가 지금은 53개나 된다.

교육청 예산이 불어나는 동안 학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고교생의 국어 영어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크게 늘었다. 고2 학생의 영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2배 넘게 증가했고,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마디로 헛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현실은 고사 직전인 대학 재정을 생각하면 더 기가 막힌다. 한국은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고 학생보다 적은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대학 등록금마저 14년째 동결되는 바람에 대학들은 실험·실습비까지 줄이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선 “대학 실습실이 고교 때보다도 못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평가 결과 한국 대학교육 경쟁력은 64개국 중 47위로 전체 교육경쟁력(30위)이나 국가경쟁력(23위)에 한참 뒤진다. 영국이 글로벌 인재 영입을 위해 취업비자 우대제도 대상 학교 37곳을 발표했는데 한국 대학은 한 곳도 없다.

재정이 궁핍했던 1972년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교육청에 자동 지원하는 제도를 만든 덕분에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우수 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요를 무시한 획일적 예산 배정이 50년간 이어지면서 비효율과 재정 왜곡을 낳고 있다. 이제는 초중고교에만 쓰도록 한 교부금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교육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재정 낭비를 막고 교육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적립금#20조5641억#교부금 장벽#제도 재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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