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이 위기 가구 발굴… “매뉴얼-교육 없어” 실효성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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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8월 25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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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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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사각지대 문제는 공공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함께해야 합니다. 기존에 있는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를 확대하겠습니다.”(25일 김동연 경기도지사)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민간 자원을 활용해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24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생활고를 겪다 생을 마감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알려진 후 24, 25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밝힌 계획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구를 발굴할 때 민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학계 전문가 및 현장 사회복지사 대부분도 동의한다. 한정된 공무원 인력이 위기 가구를 모두 발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에서 이웃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내에선 민간이 참여해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대표적인 2가지 제도 모두 실효성이 부족해, 기존 제도부터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30만 민간 참여하지만 실효성은 ‘글쎄’
복지부는 2018년부터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를 운영중이다. 지역주민들 중 일부를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해 위기 가구를 발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18년 당시 충북 증평군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활동 중인 명예사회복지공무원은 약 24만7000명에 달한다. 각 지자체마다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다르다.

현장에선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사회복지공무원 A 씨는 “주로 마을의 통장이 명예사회복지공무원으로 위촉되는데 마땅한 활동 매뉴얼이나 교육이 없어서 개인의 의지에 따라 (위기가구 발굴) 결과가 달라진다”고 전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도는 있는데 활발한 활동을 담보하는 교육이나 지원이 부족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사회복지 전달 체계를 신체에 비유하자면 ‘동맥과 정맥’에 해당하는 중앙정부 못지않게 실핏줄과 같은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은 아직 지역사회 단위까지 치밀하게 제도가 설계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민간 참여 제도로는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협의체)’가 있다. 사회보장급여법에 따라 각 읍면동에는 이 협의체가 설치돼있다. 주로 사회복지시설 관계자, 마을 통장과 부녀회장 등 지역주민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들의 주요한 역할도 위기 가구 발굴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약 6만6000명이 협의체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제도 역시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 한 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B 씨는 “체감 상 절반 정도는 협의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지자체마다 잘 운영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편차가 크고 자치단체장이나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그동안 활성화됐던 협의체의 활동이 갑자기 끊기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동건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에서 협의체 위원을 위촉할 때 관행적으로 소위 말하는 ‘관변단체’ 대표들이나 가까이 지내던 단체의 관계자를 위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사회의 환경은 계속 바뀌는데 공공이 민간을 동원하는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 “내실화 없이는 같은 문제 또 반복”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도의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자원봉사의 개념이다 보니 적극적인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이왕 제도를 운영할거면 ‘제대로’ 하자는 얘기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은 지자체마다 제각각으로 파편화된 조직인데 구체적이고 표준적인 활동 가이드라인, 위기 징후를 포착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그동안 국내 지역사회 복지는 노인과 장애인 돌봄에 집중됐다”며 “특히 빈곤한 중장년층을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게 논의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일본에도 민간이 위기 가구를 발굴하는 ‘민생위원’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지역사회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이들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잘 자리 잡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복지 사각지대 비극) 문제가 반복될 때마다 계속 새로운 대책을 내놓는 식으로는 대책의 개수만 늘어날 뿐”이라며 “기존에 운영하던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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