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김연수의 글, 쉰둘의 김연수가 고쳐 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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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늘 불안… 30대는 내일만 생각하고 살고
50대가 되니 조금 더 먼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
10만부 넘게 팔린 ‘청춘의 문장들’ 담백한 문체로 바꾼 개정판 펴내
9년 만의 단편집도 곧 출간예정

어느덧 쉰 살이 됐다.

청춘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 그즈음 서른네 살 때 펴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청춘의 끝자락에 썼던 문장을 따라 썼다.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불현듯 옛글을 고치고 있는 나. 그 시절 눌러쓰던 손에 지금의 손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50대의 난 불안이 가득했던 30대의 날 다독였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살아도 괜찮아. 믿기지 않겠지만 믿어야 해. 그렇게 믿는 과정이 앞으로의 내 인생이 될 거야.”

18년 전 썼던 젊음의 문장을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다시 담아낸 작가가 있다. 소설 ‘밤은 노래한다’(2008년) 등으로 탄탄한 독자층을 지닌 소설가 김연수(52)가 자신의 인기 에세이 ‘청춘의 문장들’(마음산책) 개정판을 선보인다. 20일 출간되는 개정판은 2년 동안이나 개고를 거쳤다고 한다.

2004년 첫선을 보인 뒤 10만 부가 넘게 팔린 이 책을 개정한 건 이번이 처음. 1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작가는 그 이유를 “청춘 때 쓴 글의 유효기간이 지났다. 원래 절판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글을 고치고 있더라”며 웃어보였다.

“읽다 보니 청춘 김연수의 절박함, 서투름,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청춘들도 이 책을 읽으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현재의 독자에게 보내는 새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2020년 초부터 올 5월까지,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뜯어고쳤습니다.”

‘청춘의 문장들’ 구판(왼쪽 사진)과 개정판.
‘청춘의 문장들’ 구판(왼쪽 사진)과 개정판.
‘청춘의 문장들’은 젊은 시절 김연수가 읽은 문장과 그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과 조선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청춘 김연수의 모습이 담겼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살펴보면 ‘청춘의 문장들’ 기존 판은 구매자 가운데 20, 30대가 73.5%로 압도적이다. 18년이나 지난 ‘낡은 글’을 왜 현재 청춘들이 찾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청춘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불안하죠. 청춘의 내가 불안에 가득 차서 쓴 글이라 공감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30대엔 바로 내일만 생각하며 불안했지만, 50대가 되고 나니 조금 더 먼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게 됐어요.”

개정판은 눈에 띄게 문장이 담백해졌다. 청춘 김연수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었다면, 중년 김연수는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김연수가 자신이 매순간 의미 있게 살지 않으면 그 즉시 자살하겠단 내용의 ‘조건부 자살 동의서’를 작성해 책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일화는 개정판에도 그대로 실렸다. 하지만 작가는 개정판에서 이 동의서를 두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아무래도 감정이 과잉된 부분이 있었어요. 젠체하고, 아는 체하는 내용은 싹 지워버렸어요. 그리고 40대에 썼지만 발표하지 않았던 에세이 3편도 추가했습니다. 삶의 골짜기같이 힘들었던 40대를 건너왔을 때 깨달은 감정에 관해 담고 싶었어요.”

2013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후 단편소설집을 내지 않았던 작가는 올해 하반기 6번째 단편소설집을 펴낼 예정. 어머니가 생전에 쓴 책을 찾아다니다 일종의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 방송국 PD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죽였다는 의혹을 받던 딸과 관련된 진실을 찾아가는 ‘진주의 결말’ 등 8편을 담는다. 9년 만에 선보이는 단편소설집에 작가는 무얼 담고 싶을까.

“현재도 진행형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고민했던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을 겪었지만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기존의 삶 대신 다른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내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50대에 쓴 이 소설집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서른넷 김연수#쉰둘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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