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어선, 좁아지는 항구…밀집 정박 중 불 나면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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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7월 8일 10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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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안에 정박 중이던 어선 3척에서 불이나 거대한 화염이 솟구치고 있다.이 화재로 3명이 다치고 2명이 실종됐다.2022.7.7/뉴스1
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림항 안에 정박 중이던 어선 3척에서 불이나 거대한 화염이 솟구치고 있다.이 화재로 3명이 다치고 2명이 실종됐다.2022.7.7/뉴스1
4일 오전 4시 29분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 내 정박 중인 연승어선 A호(29톤) 등 3척에서 불이 나 해경과 소방대원들이 불을 진압하고 있다. (제주동부소방서 제공) 2022.7.4/뉴스1
4일 오전 4시 29분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 내 정박 중인 연승어선 A호(29톤) 등 3척에서 불이 나 해경과 소방대원들이 불을 진압하고 있다. (제주동부소방서 제공) 2022.7.4/뉴스1
사흘 사이 제주에서 두 차례나 발생한 대형 화재는 그 진행 양상이 꼭 판박이다.

항구에 정박돼 있던 한 어선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이 나자마자 주변 어선으로 불이 번지고, 어선 안에 있던 유류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재발화까지 일어나 큰 피해를 남겼다는 점에서 상당히 닮았다.

지역 어민들은 어선 대형화 추세에 미처 접안시설을 넓히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밀집 정박’이 이뤄져 온 항구의 화재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난 사고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제주도가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사실상 초기 진압이 유일한 해법인 상황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성산항·한림항서 정박어선 3척 연쇄 화재, 어떻게?

4일 오전 4시29분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에서 정박 중이던 연승어선 A호(29톤) 등 어선 3척에서 불이 나 오후 늦게까지 진화작업을 벌인 소방대원들이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2022.7.4/뉴스1
4일 오전 4시29분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항에서 정박 중이던 연승어선 A호(29톤) 등 어선 3척에서 불이 나 오후 늦게까지 진화작업을 벌인 소방대원들이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2022.7.4/뉴스1
지난 4일 오전 4시23분쯤 서귀포시 성산항에 계류돼 있던 A호(29톤·연승어선·성산선적)에서 나기 시작한 불은 세 차례의 폭발성 불꽃과 함께 A호 옆 B호(39톤·연승어선·성산선적), B호 옆 C호(47톤·연승어선·성산선적)로 삽시간에 번졌다.

세 어선은 당시 북상 중인 태풍 에어리(AERE)를 피해 다른 어선들과 다닥다닥 붙어 정박 중인 상태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세 어선과 소방의 고성능 화학차가 불에 타는 등 잠정 피해액만 29억9500만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7일 오전 10시17분쯤에는 제주시 한림항에 계류돼 있던 D호(29톤·근해채낚기·한림선적)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은 뒤 D호 양 옆에 있던 E호(49톤·근해자망·한림선적)와 F호(39톤·근해자망·한림선적)에 각각 불이 옮겨 붙었다.

피해는 극심하다. 모두 D호 소속인 기관장 강모씨(43)와 인도네시아인 선원 E씨(31)가 실종 상태고, 선장 김모씨(50)와 선원 홍모씨(40), 인도네시아인 선원 A씨(33)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어민들은 모두 ‘밀집 정박’이 화를 키웠다고 했다. 어선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 항구는 여전히 비좁아 어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수밖에 없고 이 상황에서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실제 해양수산부의 등록어선통계를 보면 2000년 8.63톤에 불과했던 제주 어선 1척당 평균 톤수는 2020년 17.75톤으로 20년 사이 2배 이상 늘어났다.

김정철 한림어선주협회장은 “한림항을 오가는 어선이 300척이 넘고 어선 자체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어서 몇년 전부터 접안시설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 왔는데 행정당국이 예산 등의 이유를 들며 외면한 것이 지금의 결과”라고 한탄했다.

◇FRP 소재·가연성 물질로 ‘재발화’…“초기 진압 중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4일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 현장을 찾아 화재 진압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제주도 제공) 2022.7.4/뉴스1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4일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 현장을 찾아 화재 진압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제주도 제공) 2022.7.4/뉴스1
이번 두 차례의 정박어선 연쇄 화재에서 어선의 소재와 구조적 특수성은 재발화를 낳는 등 화재를 더 심화시켰다.

대부분의 어선들이 불에 타기 쉬운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 소재로 제작된 데다 어선 내부에는 기름, 가스 등 상당한 가연성 물질이 적재돼 있었고, 어선 내부 구조 역시 복잡하고 좁았기 때문이다.

한림항 화재 현장을 지휘한 김영호 제주서부소방서장은 “정박어선 화재는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신고 접수 시 즉각 관할 소방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는 성산항에 이어 한림항에서도 정박어선 연쇄 화재가 발생하자 제주에 있는 모든 선박에 대한 긴급 소방안전점검과 항·포구별 소방시설 등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이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어민 대상 안전교육 등 보완 대책도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보다 실효성 있는 초기 진압 방안이다. 경북 영덕소방서의 경우 정박어선 화재를 계기로 ‘IoT(사물인터넷) 기반 선박화재 화재경보시스템’을 개발해 시범운영도 하고 있는 상태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유관기관과 협력해 선박 화재를 예방하고 관련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속한 조사·점검과 안전 예방조치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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