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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포토몽타주 같은 인생[이은화의 미술시간]〈221〉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6-30 03:00업데이트 2022-06-30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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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회흐 ‘상냥한 여자’, 1926년.
포토몽타주는 여러 사진에서 따온 이미지를 조합하거나 재정렬해 새로운 형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포토몽타주 기법이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말이지만 현대미술의 형식으로 사용된 건 1910년대 중반부터였다. 독일의 다다 예술가였던 한나 회흐도 포토몽타주 기법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경 기성 예술의 형식과 가치를 부정하며 일어난 다다이즘은 반전, 반미학, 반전통을 주장한 전위적인 예술운동이다. 회흐는 베를린 다다 그룹에서 활동했던 유일한 여성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그녀는 1918년부터 포토몽타주 작업을 실험했는데, 급변하는 시대에 등장한 ‘신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주제를 많이 다뤘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20년부터 시작한 ‘민속박물관’ 연작 중 하나로, 다른 문화권의 미에 대한 개념을 끌어와 서구의 전통 미의식을 깨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드러낸다. 붉은 계열 수채화로 채색된 바탕 위에 흑백 잡지에서 오린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여자가 등장한다. 머리와 몸은 아프리카 콩고의 가면과 남성 숭배 조각상을 결합해 만들었고, 눈과 입, 손과 다리는 백인 여성의 것을 합성했다. 과하게 큰 얼굴에 비해 몸은 유난히 왜소하다. 크기가 다른 두 손은 몸 가운데 솟은 남성 성기를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사타구니 아래로는 백인 여자의 매끈한 다리가 쭉 뻗어 나와 있다. 회흐의 작품 속엔 이렇게 양성적인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양성애자였던 작가의 성정체성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회흐는 자신과 같은 신여성을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으로 여기는 당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비판하고자 했다. 몸은 정면인데, 두 발을 측면으로 묘사한 건 꽉 막힌 현실(몸)을 벗어나 자유롭게 걸어 나가고픈 욕망을 표현한 것일까. 어쩌면 그림은 다다이스트, 디자이너, 소설가, 신여성, 양성애자, 아내 등 인생 자체가 포토몽타주 같았던, 시대를 앞서 산 화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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