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돌봄… 벼랑끝 중증장애인 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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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풀이 되는 비극… 가족 6명 인터뷰

29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최은경 씨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아들 노호영 씨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자신의 차량 조수석으로 옮기고 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노 씨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와 배변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9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최은경 씨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아들 노호영 씨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자신의 차량 조수석으로 옮기고 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노 씨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와 배변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9분 30초.’

26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어머니 최은경 씨(60)를 도와 중증 뇌병변장애인 노호영 씨(26)의 옷을 갈아입히는 데 걸린 시간이다. 기자에겐 꺾인 채 굳어 있는 노 씨의 손목을 옷소매에 넣는 것조차 버거웠다. 최 씨는 “몸만 어른이지 갓난아이를 돌보는 거랑 같다”며 익숙한 듯 노 씨의 양말을 신겼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 씨를 최 씨 승합차에 그대로 들어올려 태우고 나자 등줄기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노 씨는 키 158cm, 몸무게 45kg으로 체구가 작은 편인데도 키 181cm, 몸무게 79kg인 기자는 그를 차를 태우며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26년째 혼자서 아들의 외출 준비를 해 온 최 씨는 허리와 손목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산다.
○ “한 번도 웃는 모습 못 봤다”
23일 인천 연수구에서 중증 장애를 가진 딸(39)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어머니 A 씨(62)가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날 서울 성동구에서도 40대 여성이 발달장애가 있는 6세 아들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찰과 연수구에 따르면 A 씨의 딸은 중증 뇌병변과 지적장애, 뇌전증을 함께 앓았다. A 씨의 딸은 최근 대장암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가 살던 아파트 경비원 조모 씨(70)는 “A 씨는 밤낮 가리지 않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딸을 묵묵히 달래곤 했다”며 “이웃과 전혀 말을 나누지 않았다.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 없다”고 기억했다.

동아일보는 26, 27일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진 가족을 둔 6명을 인터뷰해 비극이 되풀이 되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가족들이 평생 짊어져야 하는 돌봄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고도 했다.

30년 넘게 딸(37)을 돌봐온 어머니 홍효송 씨(63)는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며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중증 장애인 대부분은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등 기본적인 일상조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생계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중증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24시간 아이 곁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끝이 안 보이는 돌봄의 굴레에 부모들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고 했다. 딸(24)이 장애를 가진 김미경 씨(55)는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중증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은 사회적 관계도 단절된다. 김혜경 씨(53)는 장애를 가진 아들(24)이 태어난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경조사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친했던 친구와도 연락이 끊겼다. 김 씨는 “아이가 어릴 적에는 같이 외출도 했는데 클수록 같이 외출하는 게 버겁다. 하루 종일 아이와 둘이 있다 보면 서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 “중증 장애인 긴급돌봄 부족”… 전문인력·시설 시급
중증 장애인 가족을 위한 정부 지원 제도가 있긴 하지만 현장에선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활동지원사 파견이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신체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활동지원사들은 장애가 조금이라도 덜한 장애인을 돌보기를 원하기 때문. 중증 장애인 돌봄은 일은 고되지만 수당은 경증 장애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 대부분 수당이 동일하고 일부 지역에서 시간당 1000원가량을 더 주는 정도다. 활동지원사 조정숙 씨(59)는 “7년간 중증 장애인을 돌보다 허리와 팔꿈치를 다쳐 수술을 했다”며 “경증 장애인과 급여 차이가 없어 다들 상대적으로 돌보기 편한 장애인을 맡으려 한다”고 했다.

중증 뇌병변장애인 딸(26)을 둔 어머니 백모 씨(53)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까지 1년 넘게 기다렸다. 백 씨는 “일주일간 활동지원사 4명이 그만둔 적도 있다. 아이 상태만 보고 바로 떠나신 분도 있었다”고 했다.

급한 일을 볼 동안 장애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것도 문제다. 장애인 딸(26)을 돌보는 어머니 이정욱 씨(55)는 최근 아이를 들어 옮기다 오른쪽 어깨 힘줄이 끊어졌다. 그런데도 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지 못해 수술을 차일피일 미뤄야 했다. 최복천 전주대 재활학과 교수는 “일부 지자체에서 긴급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증 장애인 돌봄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가 없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맡길 수 없는 여건”이라며 “위급할 때 잠시라도 중증 장애인을 맡길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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