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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정말 한국적인 소재에도 외국관객 눈물… 작은 이야기라도 누군가는 귀 기울여줘”

입력 2022-05-27 03:00업데이트 2022-05-27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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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폐막작 ‘다음 소희’ 정주리 감독, 콜센터 실습 학생 가혹한 현실 그려
“비단 소희만의 이야기 아니다… 분노서 끝나지 말고 개선 논의 필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현지에서 25일(현지 시간) 만난 ‘다음 소희’의 정주리 감독(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영화에서 특성화고 3학년 소희(김시은)가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 고객을 응대하는 모습이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25일(현지 시간) 오후 제75회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현지 에스페이스 미라마르 극장. 콜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는 특성화고 학생이 겪는 가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그린 한국영화 ‘다음 소희’ 상영이 막바지로 접어들자 객석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물을 닦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영화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이날 현지에서 한국 취재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말 한국적인 이야기여서 외국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보편성 아니겠나. 그 어린아이가 겪은 힘듦을 다 함께 이해해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정 감독은 첫 장편영화 ‘도희야’로 2014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고, 두 번째 장편 ‘다음 소희’도 올해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초청됐다. 두 장편영화가 모두 칸의 선택을 받은 것. 특히 한국영화가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영화도 초청돼 많이 놀랐다”며 “첫 영화를 만든 뒤 아무리 작은 이야기라도 열심히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귀 기울여 준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 영화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다음 소희’에서 춤을 좋아하던 특성화고 3학년 소녀 소희(김시은)는 인터넷, IPTV 등 통신사 상품 관련 상담을 하는 콜센터에 취직하며 꿈에 부푼다. 진심을 담아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본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대기업 ‘하청의 하청업체’인 이 콜센터는 최고 수위의 감정 노동과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실적 압박을 버텨야 하는 지옥 같은 공간이다. 실습생인 고3 학생은 싼값에 고강도 노동을 시킬 수 있고 별다른 대응 방법도 몰라 몰아붙이기 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정 감독은 콜센터 상담사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고3 소녀 이야기를 추적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본 뒤 시나리오를 썼다.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었다. 그는 “영화를 만들려고 취재를 하는데 기가 막혔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모르고 있었나 싶었다”며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도 또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걸 봤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고 했다. 영화에선 형사인 유진(배두나)이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착취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난다.

제목이 ‘다음 소희’인 이유는 뭘까. 그는 “비단 소희만의 이야기만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관객들이 분노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마음에 남았으면 합니다.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영화 밖에서 이뤄지길 바라고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요.”

칸=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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